[시론] 토지초과이득세 폐지의 교훈
대기업 계열사간 물량(또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최근 한국조세연구원이 물량 몰아주기 과세방안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물량을 몰아받은 기업의 주식가치 상승이나 영업이익 등을 기초로 증여세,소득세,법인세 등을 과세하는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정부는 토론회에서 개진된 의견들을 검토해 다음 달까지 과세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각 과세 방안의 문제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무엇보다 물량 몰아주기 과세 자체의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 헌법은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있고,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지만 과잉금지의 원칙에 의해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특수관계자간의 시가 거래를 단순히 물량이 많다고 해서 변칙적 증여 행위로 일괄하여 과세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물량 몰아주기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이하 상증세법) 증여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상증세법은 증여를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재산의 이전 또는 기여에 의해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판단기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물량 몰아주기가 물량을 몰아받은 기업의 주식가치 상승이나 영업이익 증대 등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중복과세 논란도 있을 수 있다.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기업의 영업이익이 늘고 주식가치가 올랐다면 이로 인한 주주의 이익은 배당,주식 처분 등 실현되었을 때 과세되는 것이 원칙이다. 또 물량을 몰아받은 기업은 법인세를,주주는 소득세를 납부하는데 특수관계기업과의 거래 비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한편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구체적인 과세방안으로서 물량을 몰아받은 기업의 주식가치 상승분을 증여재산으로 보아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을 지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기업 경쟁력,산업 현황,세계 경제 흐름 등 매우 광범위한 상황에서 물량 몰아주기 이외의 주가 상승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를 정확하게 제거하지 않고 과세할 경우 실질과세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변동 폭이 극심한 주가에 연동하여 매년 과세를 하는 것은 조세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기업의 인위적 주가 조작 유인으로 작용하여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소액 투자자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결국 물량 몰아주기로 인한 이득은 주주가 주식을 처분했을 때 주식양도차익으로 과세해야 한다. 아울러 물량 몰아주기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상법 등 기존의 여러 가지 다양한 규제 수단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계열사간 부당지원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고 상법에서도 회사 기회 유용 금지와 이사와 회사간 거래에 대한 엄격한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주주가 대표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가 적용되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공정한 시장거래질서를 저해하고 편법적 증여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해서 적절치 못한 수단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9년 지가 안정과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 촉진을 목표로 토지초과이득세를 도입했으나 헌법상의 재산권 보장과 평등 정신에 위배되고 조세법률주의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1994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 폐지된 바 있다.

편법 상속과 증여 방지를 목표로 물량 몰아주기에 대해 증여세 등을 과세할 경우,자칫 토지초과이득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무리한 과세 추진은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이동근 <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