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드물었다. 신호위반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이경규 씨의 "안타깝습니다"만 연발됐다. 마침내 나타난 첫 주인공은 경차를 운전하던 장애인.사람들은 흔치 않은 양심에 열광했다. 연예 프로에 공익적 성격을 도입했던 담당 PD('나는 가수다' 연출자)는 훗날 고백했다.
"일밤 시청률이 낮아 고민하던 때였어요. 어느날,밤 늦게 귀가하면서 교통신호를 지켰는데 기분이 굉장히 좋은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누가 보든 말든 양심껏 행동했더니 마음속까지 환해지는 걸 보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양심(良心)의 사전적 뜻은 '사물의 선악을 구별해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바른 행동을 하려는 마음'이다. 대법원 판례의 규정은 한결 명징하다.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다.
도덕과 윤리가 사회적 합의의 성격을 띤다면 양심은 순전히 개인적인 덕목이다. 세상사람 모두를 속여도 자신만은 속일 수 없게 만드는 게 양심이다. 천하가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일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들을 두고 '양심에 털 났다'고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해 교육감 선거 당시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와 뒷돈 거래를 약속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박 교수가 거래 사실을 인정하고 검찰이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가운데 곽 교육감은 '올바름과 정직이 인생의 나침반이자 안내자였다'며 '후보 단일화 대가와 관련한 어떤 얘기도 없었고,오직 박 교수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할 수 없어 선의의 지원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교묘한 얼버무림을 통한 진실 오도는 거짓말과 다르지 않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 모두 다른 일도 아니요,교육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이들이다. 양심엔 '두 마음,곧 겉다르고 속다른 마음'(兩心)이란 뜻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할 건지는 당사자들에 달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