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월 서울 흑석동 P아파트 입주를 준비하고 있는 이모씨는 중도금 대출일이 돌아올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이자가 연 7%에 달할 정도로 높아서다. 이씨는 "사실상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있는 데다 작년 분양 당시보다 시중금리가 크게 떨어졌는데도 은행이 대출금리를 내려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중은행들이 시중금리 하락세에도 일부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에 높은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어 불만을 사고 있다. 일부 은행은 대출자들의 집단 민원이 발생할 때만 알음알음으로 이자를 깎아주고 있다.

◆아파트 담보 잡고도 6~7% 고금리

현재 일반적인 아파트담보대출의 금리는 연 4% 초반~5% 중반 수준이다. 아파트 중도금 대출은 이보다 0.5%포인트 정도 높은 수준에서 금리가 정해지는 게 보통이다. 요즘 상황에서는 연 4% 중반~6% 안팎 수준이 적정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도 최고 연 7%를 넘는 금리를 적용받는 아파트 단지가 상당하다.

이런 단지는 대부분 2009~2010년 분양했던 곳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달금리가 치솟자 은행들이 중도금 대출에도 높은 가산금리를 적용했던 탓이다. 한 번 올라갔던 대출금리는 거의 낮춰지지 않고 있다. 아파트를 짓는 데 2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중도금 대출자들이 높은 이자를 내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집단대출을 취급할 땐 금리를 깎아주는 게 관례인데 금융위기 이후에는 가산금리를 높게 책정했다"며 "한 번 정한 가산금리를 중도에 낮추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은행들이 적용해온 중도금 대출이자는 양도성 예금증서(CD)에다 2.7~3.7%포인트를 더한 수준이다.

CD 유통수익률(91일물 기준)이 현재 연 3.59%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출금리가 여전히 연 6.29~7.29%에 달하는 셈이다.

중도금 대출이 최소 수백가구를 대상으로 한 집단여신이고 입주권을 담보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천 영종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은 신모씨는 "5개월마다 연 7%대의 중도금 이자를 내고 있는데 신용대출보다도 높은 수준"이라며 "주변에선 아예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 중도금 대출을 메우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항의하면 알음알음 낮춰주기도

은행들은 집단 민원이 발생하면 중도금 대출이자를 조용히 깎아주고 있다. 모 은행은 1800여명이 입주할 예정인 옥수동 S아파트에서 항의가 빗발치자 지난 25일부터 대출이자를 종전보다 0.6%포인트씩 일괄 인하했다. 현재 연 6%대 초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한 입주 예정자는 "부도 우려가 거의 없는 삼성물산이 짓는데도 금리가 턱없이 높았다"며 "인터넷과 전화로 은행과 재개발조합 측에 집단 민원을 넣었던 게 효과를 낸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거래 은행에 공개적으로 "중도금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하고 있다. 청라신도시의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중도금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으면 향후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할 때 집단대출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공문을 은행들에 보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중도금 대출이자를 낮춰 달라는 입주민 요구가 상당히 거세다"며 "최근 들어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축소를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출금리를 떨어뜨리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아파트 입주가 개시돼 잔금대출을 취급할 때면 곧바로 금리를 2~3%포인트 낮추고 있다. 같은 집단대출이어도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경쟁이 훨씬 치열하기 때문이다.

불광동 H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모씨는 "중도금 대출이자가 연 6.6%여서 다음달 입주 땐 은행을 바꾸려고 했는데 갑자기 2%포인트 이상 낮은 금리를 제시했다"며 "은행의 얄팍한 상술이 얄밉다"고 털어놨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