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보유 중이던 현대글로비스 지분 3.51%(131만5790주)를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에 증여했다고 지난 29일 금융감독원에 공시했다. 정 회장이 당초 약속한 금액(5000억원 · 지분 7.02%)의 절반만 증여하자 일각에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아니냐"며 의아해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증여세법 탓에 어쩔 수 없이 지분의 절반을 먼저 증여하고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상속 · 증여세법(48조)은 공익법인이라도 특정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지분 5%(성실공익법인은 10%)를 초과해 보유하면 초과분에 대해 최고 60%의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편법 증여를 차단하려는 취지다.

2007년 해비치재단 설립 이후 정 회장은 1500억원 규모의 글로비스 지분을 기부했다. 재단은 지분의 상당 부분을 판 돈으로 복지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1.37%(51만2821주)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정 회장이 이번에 증여한 지분 3.51%를 합치면 4.88%다. 해비치재단이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이 5%를 넘지 않아 증여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이 약속한 지분을 한꺼번에 증여하면 많은 돈이 사회공헌에 쓰이지도 못한 채 세금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단이 앞으로 글로비스 주식을 처분해 현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지분이 낮아지면 그때 정 회장이 나머지 지분(3.51%)도 순차적으로 증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선 오너 경영인들의 개인 기부를 활성화하려면 보이지 않게 압박하기보다는 현실적 걸림돌인 증여세법부터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오너들의 개인 기부를 이끌어 내려면 증여세를 면제하는 주식 기부 한도를 높이되 편법 증여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벌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