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공정위 탓 아닌 마케팅 실패" 라지만…
식품업계에선 '신라면 블랙'이 정부의 제재에 의해 결과적으로 생산 중단으로 이어진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가격이 비싸거나 품질 수준이 낮아 시장에서 자연 퇴출되는 상품은 많았지만 출시 초반 '대박' 조짐을 보이다 정부 제재 직후 판매량 급감과 함께 4개월 만에 기업이 생산을 포기한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신라면블랙 생산 중단이 농심의 마케팅 실패 때문이냐,아니면 공정거래위원회의 가격 압박 탓이냐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고 있는 이유다.

◆'공정위 제재→판매 부진'이 원인

농심 "공정위 탓 아닌 마케팅 실패" 라지만…
농심이 30일 밝힌 신라면 블랙의 생산 중단 이유는 판매 부진이다. 회사 관계자는 "팔수록 손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중순 출시 이후 2개월 동안 150억원어치 넘게 팔렸지만 6월 말 공정위의 제재 이후 2개월간 매출은 50억원에 그쳤다.

논란의 핵심은 신라면 블랙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 배경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공정위가 제품값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라면 스프 성분조사를 실시,'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을 담았다'는 등의 광고문구가 과장됐다며 제재를 가한 것이 신라면 블랙의 판매 부진을 불러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제품 출시 직후 공정위가 가격이 적정한지 조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고가 논란에 휩싸였던 데다 6월 말 허위 · 과장 광고 판정과 함께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신라면 블랙의 광고문구가 다른 가공식품 광고와 비교할 때 크게 과장됐다고 보기 힘들다"며 "물가잡기에 나선 공정위가 광고를 문제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식품 광고에서 '자연의 비타민을 담았다' 등의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며 "신라면 블랙과 같은 잣대를 적용한다면 대부분의 기업이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심이 가격 책정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대형마트에서의 신라면 블랙 판매가격은 1300원 선으로 일반 신라면(580~600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싸다. 우골탕을 끓인 뒤 이를 다시 농축 분말로 만드는 기술과 설비 등의 투자비를 감안할 때 이런 가격 책정이 불가피했다고 농심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라면업계 관계자는 "라면 소비자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000원을 넘어서면서 고가 논쟁을 불어온 것은 실책이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선택권 제한 논란

신라면 블랙의 생산 중단은 프리미엄급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 선택권이 정부 조치에 의해 제한됐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나서 결과적으로 가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면 상품 다양성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중반 고가의 DHA우유가 출시되면서 칼슘우유 등 다양한 프리미엄 우유가 잇달아 개발된 것은 가격 다양성이 제품 다양성으로 이어진 주요 사례 중 하나라고 그는 설명했다.

가격 다양성의 제한이 기업의 혁신제품 개발 의지를 꺾어 글로벌 경쟁력을 낮추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양재호 동아대 경영학부 교수는 "네슬레가 글로벌 식품업체로 성장한 데는 오직 시장의 반응만을 바라보며 다양한 고급 제품을 개발해온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