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출자총액제한 폐지는 성공했다
2009년 폐지됐던 출자총액제한을 부활하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몇 년 사이에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가 너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20대 그룹의 신규 편입 계열사가 2008년 128개,2009년 143개,2010년 115개사가 늘었으니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폐지됐던 규제를 부활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계열사 숫자의 증가는 규제 폐지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의 폐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을 기억해 보면 규제 부활의 부당성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이 제도를 폐지했을 때 대기업 집단들이 투자를 늘릴 것인지의 여부였다. 폐지를 주장했던 측에서는 대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들고 나왔다. 계열사를 만들어 투자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출자총액제한은 계열사에 투자하는 총액을 제한한다. 그러니 투자를 촉진하려면 출자총액제한을 없애거나 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출총제를 폐지해도 투자가 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존의 계열사에 대한 지분만 확대해서 지배권을 강화하려고만 할 뿐 새로운 투자를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반대 측의 논리였다. 여기서 투자와 계열사 증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 한 가지 정리할 논점이 있다. 계열사를 늘리지 않고 하는 투자는 출자제한이 있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자제한에 걸려 못하는 투자가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계열사를 만들어 하는 투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자제한으로 인해 투자가 늘었는지 여부를 따지는 일은 출총제 폐지 이후 새로운 계열사가 많이 생겨났는지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출자제한을 폐지한 후 새로운 계열사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반대 측의 주장이 옳았다고 봐야 한다. 즉 출자제한 폐지는 기존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의 강화에만 쓰이거나 또는 하나마나 한 조치가 된다. 반면 새로운 계열사들이 많이 생겨났다면 폐지 찬성 측의 주장이 옳았던 셈이다. 즉 출자제한 폐지로 인해 투자가 늘었다고 봐야 한다.

출자제한 폐지 이후 2010년까지 3년간 20대 그룹에 신규 편입된 계열사는 386개사다. 이는 출자제한을 폐지한 결과 계열사의 신설 및 인수 등의 방법으로 투자가 늘었다고 봐야 한다. 원래 의도했던 출자제한 폐지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계열사가 늘었기 때문에 출자총액제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뒤가 안 맞는 생각이다. 계열사 숫자의 증가는 원래 의도했던 효과였다. 총수의 지배력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하지만 늘어난 계열사 중 총수 일가가 직접 지배권을 가진 계열사는 8개다. 늘어난 396개 전체 계열사의 2.1%에 불과하다.

계열사가 늘어남으로 인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해했다고 하는데,이것 역시 현실과 다르다. 늘어난 전체 계열사 중 79.1%인 305개는 기존 업종을 수직계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설령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진출을 억제하더라도 그 수단으로 출자제한을 부활하는 것은 지나치다. 계열사 확장을 통한 투자 확대는 중소기업 영역이 아닌 곳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아름다운 면과 추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맛있는 식사는 좋지만 설거지는 귀찮다. 투자라는 것도 그렇다. 투자가 일어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또 생산성이 높아져서 근로자들의 소득도 높아진다. 투자에 대해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투자는 투자기업의 자산을 늘리고 계열사를 늘리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싫다고 해서 규제를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고용과 소득의 증가도 어려워진다.

김정호 < 자유기업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