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큐브 '깜빡이' 한국기준 위반…'자기인증제' 악용 논란
한국닛산이 이달 초 국내 출시한 박스카(box car) '큐브'가 자동차관리법 자동차안전기준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법상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차량은 국내 도로에서 운행할 수 없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연구소는 이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으며 위반 내용이 확인되면 리콜 조치를 검토 할 방침이다. 한국닛산은 "미국 안전규정에 맞춘 것으로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맞서고 있다.

◆좁은 방향지시등 간격이 문제

31일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큐브는 자동차관리법 하위법령인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 44조 4항을 위반했다. 이 조항은 '차량 전면부의 방향지시등이 차체 너비의 50% 이상의 간격을 두고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차량 운전자나 보행자가 방향지시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큐브의 전폭(차체 너비)은 1695㎜이므로 방향지시등 간격이 847.5㎜ 이상이어야 한다. 실제 간격은 820㎜가량이다.

자동차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차량은 정부로부터 안전검사증을 받지 못하고 이 증서가 없으면 신규등록을 할 수 없다. 기준을 벗어난 차량은 국내 도로를 달릴 수 없다는 얘기다.

수입차 업체 고위 관계자는 "큐브는 정식 수입되기 전부터 '이효리 차'로 불리며 일본 등지로부터 병행 수입됐다"며 "병행 수입업자들은 안전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전면 범퍼 하단의 안개등 대신 방향지시등을 장착했다"고 말했다.

검사를 주관하는 자동차성능연구소 관계자는 "정식 수입된 큐브의 방향지시등 간격을 넓히지 않았다면 안전기준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 큐브 '깜빡이' 한국기준 위반…'자기인증제' 악용 논란
◆정부,기준 지켜지는지조차 '캄캄'

국토해양부 산하 자동차성능연구소는 한국경제신문이 이에 대해 문의할 때까지 이런 사실 여부를 모르고 있었다. 닛산과 같은 자동차 업체들은 '자기인증제도'를 적용받고 있어서다. 자기인증은 자동차가 안전기준에 적합함을 제작자 스스로 인증하고 판매하는 제도다. 현대자동차,BMW코리아 등 대부분 자동차 업체들은 출시 모델에 대한 제원만 자동차성능연구소에 통보하면 된다.

수입차 관계자는 "한국닛산이 국내 규정을 모를 리 없는데도 설계변경 없이 그대로 출시했다"며 "안전기준에 어긋나는 모델을 내놓아도 성능연구소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제도상 허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관리소홀과 기업의 무책임한 판매에 소비자 안전만 위협받게 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닛산, "미국 안전기준 적용했다"

현행 제도는 사후에 출시 차종에 대한 제작결함조사 등을 통해 문제가 있으면 리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조사 전까지는 결함이 있어도 그대로 팔 수 있다. 큐브는 지난 7월1일 사전예약 판매를 시작한 뒤 1600여대 이상 계약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달 중순부터 고객 인도가 시작됐으며 현재까지 400여대가 소비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결함이 인정돼 최종적으로 리콜 조치가 취해지면 이미 차를 받았거나 계약한 고객에게 불편이 예상된다. 닛산 측도 리콜을 하게 되면 손실이 불가피하다.

자동차성능연구소 관계자는 "큐브를 설계변경 없이 그대로 들여왔다면 명백한 제작결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리콜 조치가 취해진 뒤 한국닛산이 어떤 해결방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판매중단 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닛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모델은 미국 사양에 맞춰 들여왔기 때문에 국내 안전기준에도 적합할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의 자동차안전기준이 상호 호환되기 때문에 미국에서 운행할 수 있으면 국내에서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성능연구소 관계자는 "한 · 미 FTA가 타결돼 발효된다면 가능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한국의 안전기준이 독립적"이라며 "미국에서 안전기준을 통과했다고 해서 한국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자기인증제도

자동차가 안전기준에 적합함을 제작자 스스로 인증하고 판매하는 제도다. 연간 500대 이상 생산규모와 안전 및 성능시험시설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제작자는 자기인증 능력이 있다고 보고 차량 판매 전에 별도의 안전검사를 받지 않도록 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