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라고 꼭 중국 가야 하나요…디자인·품질 좋으면 국내서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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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정태상 패기앤코 대표
국내서 100% 국산자재로 생산…디자인부터 생산까지 '원스톱'
전직원 '형제애'로 묶인 문화…주인의식 가져…성과 확실히 보상
국내서 100% 국산자재로 생산…디자인부터 생산까지 '원스톱'
전직원 '형제애'로 묶인 문화…주인의식 가져…성과 확실히 보상
국내에서 유통되는 의류의 상당수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제조된 것이다. 스포츠의류도 마찬가지다. 노동집약산업인 의류는 인건비가 수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의 기능성·패션 스포츠 의류업체인 주식회사 패기앤코(PEGGY & CO)는 국내에서 100% 국산자재로 만들어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멸치와 미역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바닷가 부근에 패기앤코(대표 정태상 · 48)에 들어서면 현대식 건물에 깜짝 놀란다. 건물이 호텔처럼 깨끗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난해 완공된 최신식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직원들의 음성이 활기차다. 손님이 들어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안녕하세요"를 힘차게 외친다. 표정도 밝다. 핵심부서인 디자인실 직원들은 평균 30세 안팎이다. 전체 직원 50명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15명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의류디자인 시각디자인 전공자들이다. 이들은 연간 200여종의 신제품을 내놓는다.
개발실에는 50대 여성 10여명이 미싱작업을 하고 있다. 재단된 원단을 디자인대로 샘플을 만든다. 정태상 패기앤코 대표는 "이 시대의 마지막 재봉작업 전문가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얼핏보면 1970년대 구로공단 인근에 많이 있었던 의류업체 풍경과 비슷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의류업체들이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했는 데 이 회사는 국내에서 옷을 만들면서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설립된 이 회사는 초기 2년 동안은 거의 매출이 없었다. 정 대표는 "창업한 지 2년 뒤부터 연매출이 20억~30억원 수준으로 발돋움하다가 해마다 20~30%씩 성장해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목표는 180억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1년 만에 매출이 2배로 뛴 적도 있다.
어떻게 국산자재를 사용해 국내에서 의류를 만드는 데도 급성장하고 있는 걸까. 첫째,독특한 기업문화다. 이 회사의 건물 안에는 탁구대가 몇대 놓여있다. 퇴근 후 이들은 조별로 탁구시합을 벌인다. 회사에서 내건 상금을 놓고 치열하게 승부를 가린다. 한점 한점 득점할 때마다 "아자~~아자"하는 함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상대방이 임원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기회가 오면 날카로운 스매싱으로 공격한다. 우승팀은 진팀과 어울려 기분좋게 뒤풀이를 한다.
영업팀 직원들은 주말에는 판촉물을 들고 배드민턴 · 테니스 동호회를 찾아다닌다.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들은 카메라를 들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광안리나 해운대 등지에서 최신 패션을 촬영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들이다.
이들이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뛰는데는 이 회사만의 독특한 문화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형제애(brotherhood)'라는 유대관계로 묶여 있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다. 연말에 직원들에게 기여도에 따라 특별 보너스가 지급된다. 정 대표는 "직원에 따라 그 금액이 월급의 600%에 이른 적도 있다"고 전했다. 물론 연봉과는 별도다. 직원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고 회사는 성과를 확실히 보상한다.
둘째,철저한 품질관리다. 이 회사에 기능성 원단을 납품하는 벤텍스의 고경찬 사장은 "패기앤코에 납품하는 게 일본에 수출하는 것보다 까다롭다"고 말했다. 예컨대 염색상태 물빠짐정도 신축성 수축성 땀흡수정도 등 수십가지 포인트를 엄격하게 점검한다. 대신 검사에 합격하면 며칠 내 현금으로 결제해준다. 제품은 인근 협력업체를 통해 생산한다. 생산공장 품질관리도 원단 검사 못지 않게 까다롭다.
셋째,디자인 개발부터 제품 생산까지 원스톱 시스템을 바탕으로 기능성 패션 스포츠의류를 전문 생산한다. 자재도 직접 발주한다. 따라서 원가와 생산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는 단체 판매를 많이하는 네트 스포츠 시장의 특성과 잘 맞아 떨어진다. 네트스포츠는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을 의미한다. 이 분야에선 동호인들이 큰 힘을 갖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의류가 좋으면 그 제품을 단체로 주문한다. 선택 기준은 품질과 디자인이다. 구매결정권은 여성 동호인들이 주로 갖고 있다.
"패기앤코 제품은 디자인이 독창적이고 섬세해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고 정 대표는 설명했다. 요즘 동호인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류를 선호한다. 아울러 맵시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어떤 의류는 10회이상 피팅과정을 거친다. 이들은 의류가 땀흡수가 잘되는지,금방 건조되는지 등도 꼼꼼히 살핀다. 네트 스포츠 동호인들은 매일 운동을 즐긴다. 옷도 매일 빤다. 이 과정에서 옷색깔이 변하지 않는지도 따진다. 정 대표는 "패기앤코 제품은 동호회 사이에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며 "시즌별로 새로 나오는 신제품을 사기 때문에 우리 제품을 수십벌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창업 후 6년 만인 작년에 멋진 사옥(대지 2000여㎥,연건평 5000㎥ 규모)을 장만했으니 작은 성공은 거둔 셈이다. 게다가 "예금을 감안하면 사실상 빚이 제로인 회사"라고 패기앤코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역정은 순탄치 않았다.
경남 함양 출생인 그는 빈농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춘궁기마다 어머니는 어김없이 이웃집으로 쌀을 구하러 다니셨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동의대 행정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학비를 조달할 길이 막막했던 그는 노동판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그는 한번 일을 하면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철저하게 마무리했다.
대학 졸업 후 부산지역 신발 관련 업체에 취업해 15년간 일했다. 이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영업과 대리점 관리 등 수많은 업무를 맡으면서 무엇보다 '열정'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는 "성공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남몰래 흘린 눈물과 노력이 있다"는 당시 사장의 가르침을 지금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자 창업에 나섰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에서 월급 잘 받고 있는 데 망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며 말리는 홀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하고 부산 해운대의 작은 사무실에서 3명의 직원과 함께 창업했다. 월세가 가장 저렴한 건물 3층의 반칸을 얻어 직접 박스를 나르고 영업을 하며 시장개척에 나섰다. 직원들 스스로 밤낮 없이 일했다. "주말에도 동호회를 찾아다니며 뛰는 직원들을 보고 '우리는 형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정 대표는 설명했다. 직원들에게 그가 할 수 있는 능력 범위 안에서 잘해주려고 하는 것이나 매년 장애인복지시설을 돕는 것도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서다. 팔순을 맞아 올해 초 처음으로 아들 회사에 초대받은 노모의 눈에는 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정 대표는 요즘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 등지로 샘플을 내보내고 있다. 그는 "일본과 중국 바이어들이 우리 제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제품을 달라고 하지만 아직 생산능력이 모자라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조만간 이들 지역에 대한 수출전략을 수립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패기앤코가 패기있게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는 모습이 궁금해진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멸치와 미역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바닷가 부근에 패기앤코(대표 정태상 · 48)에 들어서면 현대식 건물에 깜짝 놀란다. 건물이 호텔처럼 깨끗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난해 완공된 최신식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직원들의 음성이 활기차다. 손님이 들어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안녕하세요"를 힘차게 외친다. 표정도 밝다. 핵심부서인 디자인실 직원들은 평균 30세 안팎이다. 전체 직원 50명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15명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의류디자인 시각디자인 전공자들이다. 이들은 연간 200여종의 신제품을 내놓는다.
개발실에는 50대 여성 10여명이 미싱작업을 하고 있다. 재단된 원단을 디자인대로 샘플을 만든다. 정태상 패기앤코 대표는 "이 시대의 마지막 재봉작업 전문가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얼핏보면 1970년대 구로공단 인근에 많이 있었던 의류업체 풍경과 비슷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의류업체들이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했는 데 이 회사는 국내에서 옷을 만들면서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설립된 이 회사는 초기 2년 동안은 거의 매출이 없었다. 정 대표는 "창업한 지 2년 뒤부터 연매출이 20억~30억원 수준으로 발돋움하다가 해마다 20~30%씩 성장해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목표는 180억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1년 만에 매출이 2배로 뛴 적도 있다.
어떻게 국산자재를 사용해 국내에서 의류를 만드는 데도 급성장하고 있는 걸까. 첫째,독특한 기업문화다. 이 회사의 건물 안에는 탁구대가 몇대 놓여있다. 퇴근 후 이들은 조별로 탁구시합을 벌인다. 회사에서 내건 상금을 놓고 치열하게 승부를 가린다. 한점 한점 득점할 때마다 "아자~~아자"하는 함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상대방이 임원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기회가 오면 날카로운 스매싱으로 공격한다. 우승팀은 진팀과 어울려 기분좋게 뒤풀이를 한다.
영업팀 직원들은 주말에는 판촉물을 들고 배드민턴 · 테니스 동호회를 찾아다닌다.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들은 카메라를 들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광안리나 해운대 등지에서 최신 패션을 촬영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들이다.
이들이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뛰는데는 이 회사만의 독특한 문화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형제애(brotherhood)'라는 유대관계로 묶여 있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다. 연말에 직원들에게 기여도에 따라 특별 보너스가 지급된다. 정 대표는 "직원에 따라 그 금액이 월급의 600%에 이른 적도 있다"고 전했다. 물론 연봉과는 별도다. 직원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고 회사는 성과를 확실히 보상한다.
둘째,철저한 품질관리다. 이 회사에 기능성 원단을 납품하는 벤텍스의 고경찬 사장은 "패기앤코에 납품하는 게 일본에 수출하는 것보다 까다롭다"고 말했다. 예컨대 염색상태 물빠짐정도 신축성 수축성 땀흡수정도 등 수십가지 포인트를 엄격하게 점검한다. 대신 검사에 합격하면 며칠 내 현금으로 결제해준다. 제품은 인근 협력업체를 통해 생산한다. 생산공장 품질관리도 원단 검사 못지 않게 까다롭다.
셋째,디자인 개발부터 제품 생산까지 원스톱 시스템을 바탕으로 기능성 패션 스포츠의류를 전문 생산한다. 자재도 직접 발주한다. 따라서 원가와 생산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는 단체 판매를 많이하는 네트 스포츠 시장의 특성과 잘 맞아 떨어진다. 네트스포츠는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을 의미한다. 이 분야에선 동호인들이 큰 힘을 갖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의류가 좋으면 그 제품을 단체로 주문한다. 선택 기준은 품질과 디자인이다. 구매결정권은 여성 동호인들이 주로 갖고 있다.
"패기앤코 제품은 디자인이 독창적이고 섬세해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고 정 대표는 설명했다. 요즘 동호인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류를 선호한다. 아울러 맵시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어떤 의류는 10회이상 피팅과정을 거친다. 이들은 의류가 땀흡수가 잘되는지,금방 건조되는지 등도 꼼꼼히 살핀다. 네트 스포츠 동호인들은 매일 운동을 즐긴다. 옷도 매일 빤다. 이 과정에서 옷색깔이 변하지 않는지도 따진다. 정 대표는 "패기앤코 제품은 동호회 사이에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며 "시즌별로 새로 나오는 신제품을 사기 때문에 우리 제품을 수십벌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창업 후 6년 만인 작년에 멋진 사옥(대지 2000여㎥,연건평 5000㎥ 규모)을 장만했으니 작은 성공은 거둔 셈이다. 게다가 "예금을 감안하면 사실상 빚이 제로인 회사"라고 패기앤코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역정은 순탄치 않았다.
경남 함양 출생인 그는 빈농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춘궁기마다 어머니는 어김없이 이웃집으로 쌀을 구하러 다니셨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동의대 행정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학비를 조달할 길이 막막했던 그는 노동판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그는 한번 일을 하면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철저하게 마무리했다.
대학 졸업 후 부산지역 신발 관련 업체에 취업해 15년간 일했다. 이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영업과 대리점 관리 등 수많은 업무를 맡으면서 무엇보다 '열정'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는 "성공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남몰래 흘린 눈물과 노력이 있다"는 당시 사장의 가르침을 지금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자 창업에 나섰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에서 월급 잘 받고 있는 데 망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며 말리는 홀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하고 부산 해운대의 작은 사무실에서 3명의 직원과 함께 창업했다. 월세가 가장 저렴한 건물 3층의 반칸을 얻어 직접 박스를 나르고 영업을 하며 시장개척에 나섰다. 직원들 스스로 밤낮 없이 일했다. "주말에도 동호회를 찾아다니며 뛰는 직원들을 보고 '우리는 형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정 대표는 설명했다. 직원들에게 그가 할 수 있는 능력 범위 안에서 잘해주려고 하는 것이나 매년 장애인복지시설을 돕는 것도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서다. 팔순을 맞아 올해 초 처음으로 아들 회사에 초대받은 노모의 눈에는 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정 대표는 요즘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 등지로 샘플을 내보내고 있다. 그는 "일본과 중국 바이어들이 우리 제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제품을 달라고 하지만 아직 생산능력이 모자라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조만간 이들 지역에 대한 수출전략을 수립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패기앤코가 패기있게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는 모습이 궁금해진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