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알렉산더 맥퀸,스텔라 매카트니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PPR(피노프랭탕르두트)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74)은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제국'을 이끌고 있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라이벌이다.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를 소유하고 있어 세계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로도 꼽힌다. 지난해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 순위 67위에도 올랐다.

미술품 애호가이자 패션업계의 거장 피노 회장이 서울을 찾았다. 3일부터 오는 11월19일까지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현대미술 소장품전을 펼치는 그는 "미술은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각예술"이라며 "내가 소장한 작품들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0여년간 인상파 그림을 포함해 근 · 현대미술품 2000여점을 구입했다. 그림을 고르는 그만의 방법도 소개했다.

"30세에 미술관을 처음 방문해 컬렉션을 시작했죠.처음에는 보기 좋은 그림을 수집하다 점차 인상파와 입체파 그림에 손이 갔습니다. 저는 작품을 구입할 때 미술비평가들의 말에 의존하지 않는 편입니다. 좋은 작품을 보면 '전율' 같은 게 느껴집니다.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 때 구입하지요. "

피노 회장은 프랑스 출신이지만 이탈리아 베니스에 미술관을 두 개나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팔라조 그라시(2006년)와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2009년)을 잇달아 개관해 국제 시각예술의 장으로 자리잡게 했다. 도가나 미술관은 피노 회장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옛 세관 건물을 2000만유로에 사들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대미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이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베니스는 국제적인 예술 도시입니다. 도시 자체가 작품이지요. 15~16세기 건축품이 즐비하고요. 현대미술과 비교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술관을 지었습니다. 미술을 통해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와 소통하는 장소로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기업 경영과 삶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미술을 애호하는 것은 작품의 재화적 가치 이상으로 기업경영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패션업체 오너에게는 미래의 사업이 중요하다"며 "오늘을 보고 미래를 전망하는데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향후 유행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엔 친구의 소개로 작가 이우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가를 만날 때 절대 국적을 묻지 않는 게 제 컬렉션의 원칙입니다. 경계가 없고 국적도 필요 없는 게 예술 아닙니까. 컬렉션에 선입견은 금물입니다. 이우환 씨는 아직 국제적으로 '핫'한 작가는 아니지만 최근 미니멀리즘 미학이 힘을 받고 있는 만큼 조만간 스타로 부상할 것으로 봅니다. "

피노 회장 소장품전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제프 쿤스를 비롯해 무라카미 다카시,신디 셔먼,데미언 허스트의 작품 23점이 걸린다. 대부분 정치,사회,역사성과 인간 실존에 대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