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시장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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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변덕이 물질적 진보 유발…정부개입 커지면 변화 기회 줄어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목소리,중소기업 적합품목을 지정해야 한다는 요구,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 등의 실체는 무엇인가. 또 공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행해지는 각종 규제를 얻어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주장이나 요구가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증명할 필요 없이 명백하다. 그리고 이는 사회 구성원 간 원활한 협동을 방해함으로써 물적 토대를 파괴하고 삶의 질을 낮춘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이나 요구가 대중의 지지를 얻고 정책화되는 이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insecure)하게 만든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의 실체는 자신들의 처지를 위협할 수 있는 환경 변화에 반대함으로써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확대하는 방편으로 이런 요구와 주장을 정책화하는 경향을 가진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수많은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 대상이 되는 이유는 기득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람들의 안정적 삶을 해친다는 지적은 옳다. 문제는 인간미 없는 시장과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탐욕스러운 기업가들이 이런 기득권을 위협하는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기득권을 위협하는 것은 시장이나 기업가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소비자들이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중소기업 적합품목 지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출자총액을 제한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노동절약적 기술진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른 영역에서는 소비자로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존의 사업자들을 위협한다.
모든 생산자는 소비자의 변덕 때문에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한다. 어느 누구도 소비자의 변덕을 피해갈 수 없다. 경쟁자를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 변화에 더 빨리 효과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삶의 질적 개선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간파하고 기존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만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역사는 바로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적응해 온 과정의 기록이다. 이런 위협이 사업자들을 더욱 분발하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 수준은 훨씬 낮았을 것이다. 결국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의 행동이 안정을 위협하는 힘의 원천이자 물질적 진보의 견인차다.
인기 스타의 경우는 더욱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스타가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하는 것은 죽 끓듯하는 소비자들의 변덕 때문이다. 영화나 음반 제작자는 이런 소비자들의 변덕을 외면할 수 없다. 한때는 떠오르는 스타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한 할리우드의 배우들은 이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데 매우 익숙하다. 루드비히 폰 미세스는 그것이 할리우드에 좌파가 많은 이유라고 설명한다.
변화로부터 자유롭고 기득권이 보호되는 사회는 역동적이지 못하고 정태적 상황에 빠진다.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할 수 있으나 역동적인 변화를 방해하는 제반 주장이나 요구는 종국적으로 우리 모두를 가난으로 몰아가고 미래의 삶을 파괴한다.
정치권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일이 잦을수록 경쟁은 제한되고 소비자들의 행동에 의해 기득권이 사라질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동반성장'이나 '공생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울타리를 치거나 칸막이를 하면 그런 기회가 더욱 줄어든다. 당연히 우리의 물질적 · 정신적 풍요도 낮아진다.
마(魔)의 2만달러 시대를 훌쩍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데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변화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은 변화에 적응하도록 인도하는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이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
이런 주장이나 요구가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증명할 필요 없이 명백하다. 그리고 이는 사회 구성원 간 원활한 협동을 방해함으로써 물적 토대를 파괴하고 삶의 질을 낮춘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이나 요구가 대중의 지지를 얻고 정책화되는 이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insecure)하게 만든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의 실체는 자신들의 처지를 위협할 수 있는 환경 변화에 반대함으로써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확대하는 방편으로 이런 요구와 주장을 정책화하는 경향을 가진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수많은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 대상이 되는 이유는 기득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람들의 안정적 삶을 해친다는 지적은 옳다. 문제는 인간미 없는 시장과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탐욕스러운 기업가들이 이런 기득권을 위협하는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기득권을 위협하는 것은 시장이나 기업가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소비자들이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중소기업 적합품목 지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출자총액을 제한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노동절약적 기술진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른 영역에서는 소비자로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존의 사업자들을 위협한다.
모든 생산자는 소비자의 변덕 때문에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한다. 어느 누구도 소비자의 변덕을 피해갈 수 없다. 경쟁자를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 변화에 더 빨리 효과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삶의 질적 개선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간파하고 기존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만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역사는 바로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적응해 온 과정의 기록이다. 이런 위협이 사업자들을 더욱 분발하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 수준은 훨씬 낮았을 것이다. 결국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의 행동이 안정을 위협하는 힘의 원천이자 물질적 진보의 견인차다.
인기 스타의 경우는 더욱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스타가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하는 것은 죽 끓듯하는 소비자들의 변덕 때문이다. 영화나 음반 제작자는 이런 소비자들의 변덕을 외면할 수 없다. 한때는 떠오르는 스타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한 할리우드의 배우들은 이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데 매우 익숙하다. 루드비히 폰 미세스는 그것이 할리우드에 좌파가 많은 이유라고 설명한다.
변화로부터 자유롭고 기득권이 보호되는 사회는 역동적이지 못하고 정태적 상황에 빠진다.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할 수 있으나 역동적인 변화를 방해하는 제반 주장이나 요구는 종국적으로 우리 모두를 가난으로 몰아가고 미래의 삶을 파괴한다.
정치권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일이 잦을수록 경쟁은 제한되고 소비자들의 행동에 의해 기득권이 사라질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동반성장'이나 '공생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울타리를 치거나 칸막이를 하면 그런 기회가 더욱 줄어든다. 당연히 우리의 물질적 · 정신적 풍요도 낮아진다.
마(魔)의 2만달러 시대를 훌쩍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데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변화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은 변화에 적응하도록 인도하는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이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