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도쿄 시내 한 술집의 2층 창문이 열리며 중년의 곱슬머리 남성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손에는 화성 모형이 들려 있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이게 화성입니다. 나는 외계인입니다. "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일본 총리의 목소리였다. 밖에서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기자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는 '외계인'이다. 일본 언론은 항상 그의 이름 앞에 이 수식어를 붙인다. 간혹 'ET'라고도 불린다. 얼굴부터 지구인과 살짝 다르다. 변장을 했겠지만 티가 난다. 약간 튀어나온 눈,넓은 미간,세로보다 가로가 좀 더 긴 듯한 얼굴….'지구어'에 익숙지 않다보니 '설화(舌禍)'도 적지 않았다. 당시 부총리였던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는 직속 상관의 이런 해프닝이 있을 때마다 "우주인 총리라 지구인과 뉘앙스가 다를 뿐"이라고 해명했다.

무엇보다 우주를 건너온 외계인답게 생각의 스케일이 다르다. 짧은 임기였지만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국가에 여러 가지 굵직한 화두를 던졌다. 아시아 통합과 관료주의 타파,우애 정치 등은 지금도 지구의 여러 나라들이 곱씹어보는 메시지다.

자민당 아성을 무너뜨리고 5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냈던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11월1~3일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1'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미리 연락을 해봤다. "이번 인재포럼에서 어떤 얘기를 하실 건가요?" 돌아온 대답이 외계인스럽다. "어떤 말을 할지 미리 예단하지 마세요. 아마 틀릴 겁니다. "

그가 인재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외계인으로부터 특별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이다.

◆정치적 반목의 해법은 '우애'

하토야마 전 총리는 '우애'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그가 사용하는 '우애'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다. 프랑스 혁명 구호였던 '자유 평등 박애'가운데 '박애'에서 따온 말이다. 연원은 일본 주재 오스트리아 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구덴호프 카레르기 백작이 '범유럽'이라는 책을 출간한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범유럽'은 유럽 통합을 주장한 책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할아버지인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박애'라는 말을 형제간이나 친구 사이의 두터운 정과 사랑을 뜻하는 '우애'로 바꿨다고 한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우애'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이라는 다소 이상론에 가까운 구호를 외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조부의 영향 때문이다.

하토야마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학박사를 받은 뒤 일본 센슈(專修)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9세에 자민당 소속 중의원 배지를 달았다. 순탄한 정치 인생이 시작되는 듯했지만 곧 방향을 틀었다.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자민당의 역사적 역할은 끝났다"며 탈당계를 제출했다.

하토야마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만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차별화 포인트는 '우애'였다. 그는 1996년 옛 민주당 창당 선언문에서 "자유는 약육강식의 방종에 빠지기 쉽고 평등은 튀어나온 못을 때리는 식으로 타락할 수 있다. 양 극단을 바로잡는 것이 우애"라고 말했다.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탈피해 '더불어 사는 나라'를 건설하자는 그의 외침도 이런 정치관의 연장선이다.

◆아시아 통합을 꿈꾼다

우애의 정신은 국경을 넘어간다. 그는 일본 사회 내의 갈등 해소뿐만 아니라 국가 간 반목을 푸는 열쇠도 '우애'에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전략으로는 동아시아공동체 창설과 아시아 통화 통합을 주장한다. "무한경쟁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웃과 더불어 잘 지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말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한 · 중 · 일 3국과 아세안(ASEAN) 10개국이 참여하는 경제 및 안보 공동체를 꾸리자는 것이다. 그 다음 유럽연합(EU)이 1999년 도입한 단일 화폐 유로(EURO)처럼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 화폐인 '아시아 공동 통화'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하토야마의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보이스'라는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금융위기는 '달러 기축체제'에 대한 우려뿐만 아니라 '미국 일극(一極)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아직 이를 대신할 패권국가나 기축통화는 보이지 않는다"고 썼다. 아시아 공동 통화를 통해 이런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미완성으로 끝난 '관료와의 전쟁'

일본 총리들은 대대로 임기가 짧은 편이다. 의원내각제와 파벌정치라는 특성상 한 사람이 오래 권좌에 머무르기 힘든 구조다. 이런 영향으로 나라살림은 대부분 관료가 챙겼다. 하토야마는 일본이 저성장 국면에 들어가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경직된 관료주의'라고 판단했다. 무슨 무슨 '족(族)'으로 불리는 정치인들과 규제를 틀어쥔 관료,여기에 특혜를 향유하는 기업이 뭉쳐 '철의 트라이앵글'을 만드는 바람에 일본의 성장세가 둔화됐다는 생각이다. 그는 TV토론 등에 나갈 때마다 "4500여개 기관에 2만5000여명의 공무원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가 12조엔의 예산을 좀먹고 있다. 낙하산 인사의 천국을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하토야마는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관료정치의 상징인 '사무차관 회의'를 123년 만에 폐지했다. 사무차관 회의는 통상 각료회의가 열리기 전날 법령과 인사 등에 관한 안건을 사전에 조율하는 모임으로 여기서 조정하지 못한 안건은 아예 각료회의에 올리지 않았다. 사실상 정책결정기구 기능을 해온 셈이다. 하토야마는 이런 사무차관 회의를 없애는 대신 핵심 측근 정치인들로 구성된 국가전략국이란 조직을 만들고 예산 재편성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9개월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관료주의에 대한 개혁은 미완성인 채로 끝났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