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후보 없다? 차라리 당 해산하라
한 편의 코미디가 따로 없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둘러싼 정치권 안팎의 움직임 얘기다. 당내 후보들을 말리며 당밖을 기웃거리는 여야,입당은 하지 않겠다는 당밖 스타들.이길 수만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정치권의 승리지상주의.결국 인기투표로 변질되는 시장선거.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게 없다.

우선 당내 인사의 출마를 말리는 진풍경은 정치부 기자 20년 만에 처음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선거가 치러지는 10월26일까진 채 두 달이 남지 않았다. 지금쯤 후보군이 정리되고 게임의 룰을 정해야 할 시점이지만 조용하기만 하다. 여당엔 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아예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야 모두 당밖만 바라보고 있어서다. "필승후보를 찾는다"며 외부인사 영입에 목을 맨 상태다. 그러니 당내 인사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심지어 여당 대표가 당내 지지율 1위 후보에게 "탤런트는 곤란하다"고 흠집을 내는 지경이다. 야당도 배수진을 치며 출마를 선언한 당내주자를 소 닭 보듯 한다. 여야가 스스로 "우리는 안 돼"라며 자기비하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여야가 외부 인사 영입에 열을 올리면서 이들의 주가는 상종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변호사,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말이 필요없는 스타다. 안 원장은 의사에서 벤처기업인,대학교수,청소년 멘토로 변신하며 성공적인 스토리가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 박 변호사는 존경받는 시민운동가다. 황 전 사장은 반도체 신화를 만든 주역이다. 이들 면면만 보면 당밖의 스타들이 총출동해 인기투표로 겨루는 '나가수'를 연상케 한다. 누구도 "거대도시 서울의 행정은 다른 문제"라며 검증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길 수만 있다면 누구든 괜찮다"는 식이다.

이들은 굳이 자격요건을 따진다면 꿀릴 게 없다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안 원장과 박 변호사가 정당이 내민 손을 뿌리치고 무소속을 고집하는 데는 이런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두 사람에게 기존 정당이 극복의 대상으로 다가온 게 당연한 결과다.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비정한 정치현실이다. 안 원장은 "서울시장은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소프트웨어를 바꾸고 싶다고도 했다. 시민이 바라는 바지만,정치울타리 없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집권여당 소속인 오세훈 전 시장은 의회를 장악한 야당에 끌려다니다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한때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며 무당파를 꿈꿨던 박찬종 문국현 씨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서울에 무당파 시장은커녕 국회의원,구청장 한 명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시는 여느 단체장과는 다르다. 한 해 예산이 20조원이 넘는 '작은 대한민국 정부'다. 게다가 서울시장은 대권으로 가는 길목으로 인식되는 자리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무당파로 당선이 쉽지도 않거니와,설령 당선되더라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여야의 견제를 넘기란 쉽지않다는 게 진실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안 원장을 무당파로 몬 건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든 정치권이다. 여야는 닭쫓던 개 신세다. 스스로 후보를 낼 능력이 없는 데다 당밖 스타들의 조롱거리가 된 게 현주소다. 국민의 마음은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국민이 외면한 당을 해산하고 '헤쳐모여'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