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 다니는 이모씨(38)는 은퇴 준비를 포기한 상태다. 당장 살고 있는 서울 서초동 전세 아파트의 만기가 11월 돌아온다. 대략 1억원은 올려줘야 한다. 두 아이 교육비로도 매달 150만원이 들어간다. 이씨에게 은퇴 준비는 사치에 불과하다.

이씨처럼 은퇴 준비를 포기했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 10명 중 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4일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와 함께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신뢰도 95%,오차범위 ±4.38%) 결과 '은퇴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67.4%에 달했다.

은퇴 준비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57.0%로 가장 많았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원인으로는 △수입 부족(42.7%) △과도한 주택구입 자금 부담(18.8%) △물가 급등에 따른 생활비 부담(17.7%) △자녀 교육비 부담(16.7%) 등을 꼽았다. '집값 · 교육비 · 고(高)물가'라는 3중고로 인해 상당수 사람들이 눈앞에 다가온 '100세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은퇴 후 필요한 노후자금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0.6%가 '3억~5억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련한 은퇴자금으로는 '기본적인 생활도 영위하기 어렵다'(44.0%)거나 '턱없이 부족하다'(50.0%)는 사람이 전체의 94%를 차지했다.

재테크 전문가들이 은퇴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장기투자 문화도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 장기투자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적립식 금융투자 상품에 10% 미만만 투자한다'는 사람이 63.2%였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은 "작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79.6세로 20년 전에 비해 7.8년 늘어났지만 100세 시대에 대한 준비는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