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건설사 임원을 지낸 60대 초반의 A씨.현직에 있을 때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잘 나가던 그였지만 은퇴 후 생활은 하루하루가 힘겹다. 중동 건설현장과 국내 주택분양 현장을 누비다 보니 노후자금 마련에 전혀 신경쓰지 못했던 것.서울 동작구에 1억5000만원의 대출이 끼어있는 전용면적 84㎡짜리 아파트와 1억원대 금융자산이 노후자금의 전부다. 아직 대학생인 아들 교육비도 대야 하는 그는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잘 나가던 시절 노후 대비를 소홀히 한 게 후회막급"이라고 말하곤 한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오래 사는 게 축복은 아니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은퇴자금이 없다면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신문이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한국인들은 100세 시대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다.

◆"노후 대비 투자 규모 늘려야"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희망하는 평균 은퇴 연령은 59.8세로 나타났다. 작년 평균 수명(79.6세)을 기준으로 하면 은퇴 후 20년 동안 생활할 노후자금을 미리 마련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다.

'은퇴 후 노후자금으로 필요한 금액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3억~5억원'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30.6%로 가장 많았다. '5억~7억원'이라는 응답자는 23.6%였다. 절반 이상이 5억원 안팎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중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연 4%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5억원을 은행예금에 넣어둘 경우 이자로 한 달에 166만원가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돈을 모으기 위해 한 달에 투자 혹은 저축하는 금액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후 대비를 위해 한 달에 투자하는 금액이 '5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44.8%로 가장 많았다. '50만~100만원'(22.2%)이라는 응답자가 뒤를 이었다. 투자수익을 감안하지 않고 매달 최대 100만원을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25~42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18.6%가 '월소득 600만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금액 자체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강우신 기업은행 강남PB센터장은 "집값 · 교육비 · 고물가의 3중고를 감안하더라도 노후 대비 '종잣돈' 마련을 위한 투자금액을 지금보다 늘릴 필요가 있다"며 "월급의 30%를 무조건 떼어내 우선적으로 노후 대비에 투자하고,나머지로 어떻게든 생활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착되지 않은 장기투자 문화

재테크 전문가들은 "적립식 장기투자가 노후 대비 자금을 마련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 4%대 정기예금만으로는 종잣돈 마련에 한계가 있고 미국의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로 시작된 주가 조정에 따라 개별 종목에 직접투자하는 리스크도 커졌기 때문이다. 남수란 신한은행 파이낸스골드센터 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던 2008년 7월부터 적립식펀드(국내 주식형)에 3년간 돈을 꾸준히 부었을 경우 30~40%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설명과 배치됐다. 현재 준비한 은퇴자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동산(56.8%)이었다. 전체 금융자산에서 적립식 금융투자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0%'인 응답자가 35.4%나 됐다. '10% 미만'(27.8%)과 '10% 이상~20% 미만'(20.2%)인 사람도 상당수였다. 투자 기간도 △1년 이상~2년 미만(24.5%) △2년 이상~3년 미만(22.0%) △6개월 이상~1년 미만(13.6%) 등의 순이었다.

송종현/서정환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