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박모씨(33)는 두 달째 신혼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직장이 있는 강남으로 출퇴근하기 편하면서 전셋값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한 분당에 전셋집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전세 물건이 없어서다. 박씨는 "주말을 맞아 정자동 서현동 수내동 등 분당지역 중개업소를 둘러봤지만 전세매물이 10개도 안돼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찾지 못했다"며 "결혼 날짜는 다가오는데 집을 구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존 입주자 재계약…물건 품귀

강남 목동 중계동 등 서울지역은 물론 분당 판교 등 수도권 전세시장에서 매물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름 휴가와 추석 연휴를 마치고 전셋집 찾기가 본격화되는 추석 이후 전세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 암사동 우리들공인 이용호 사장은 "가을 이사철에 고덕시영아파트 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겹치면서 전용 85㎡ 이하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다"며 "3000여가구 대단지인 선사현대아파트 단지도 중소형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계동 부동산플러스공인 관계자는 "중계주공5단지에만 2400여가구가 있는데 물건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라며 "학군 문제로 이사오려는 수요가 많아 전세물건이 부쩍 달린다"고 말했다.

전세물건이 상대적으로 풍부했던 분당 용인지역도 공급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자동 천사공인 장덕주 사장은 "대부분의 기존 입주자들이 전세난을 우려해 집주인들과 보증금을 높여주기로 재계약을 맺고 있어 시장에 나오는 물건이 드물다"고 전했다.

◆전세난 심화 우려

전세난이 심화되면서 같은 크기의 집이라도 집주인이 요구하는 가격이 급매물로 거래된 물건에 비해 5000만~7000만원 높은 사례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반전세(보증부 월세) 매물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달 하순까지만 해도 전셋값이 2억5000만~2억6000만원이던 중계동 주공5단지 전용 76㎡는 지난주 2억9000만원에 매물이 나왔다. 호가이긴 하지만 1주일 사이에 4000만원이나 오른 셈이다.

잠실동 리센츠공인 관계자는 "집을 구하는 사람은 많고 매물은 없으니 철저하게 집주인들이 우위에 있는 상황"이라며 "5억1000만원이던 전용 85㎡ 전셋값이 최근엔 보증금 3억원,월세 100만원에 거래됐다"고 말했다.

추석 이후 가을 이사 수요와 대치동 고덕동 등 재건축 단지의 이주 수요가 맞물려 전셋값은 상당 기간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대치동 삼성공인 황대선 사장은 "다음달 말이 1차 이주 기한인 1446가구의 청실아파트 주민들 가운데 80%는 아직 전셋집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청실 주민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대치동 전세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전국의 전셋값 누적 상승률은 평균 9.1% 로 작년 연간 상승률 7.1%를 넘어섰다.

◆경기 일부지역에선 매수 전환도

전셋값 상승세가 계속되자 용인 수원 화성 등 경기 남부권에서는 시세보다 10% 안팎 저렴한 급매물을 중심으로 매수세도 나타나고 있다.

용인 죽전동 강남공인의 권오덕 사장은 "역세권의 전용 59㎡는 매매와 전세 사이의 가격 차이가 1억원도 채 안돼 실수요자 중심으로 매매 계약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과 화성 안양 등의 33~66㎡(10평대) 초소형 아파트 가운데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를 넘는 물량들도 있다. 이들 아파트는 전세금에 1000만~3000만원만 더 보태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죽전동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셋집을 구하러 온 손님 10명 중 5명은 매매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2년 뒤 전셋값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집을 사두려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김보형/심은지/박한신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