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작년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이뤘던 경쟁 후보에게 금품을 지급한 것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무상급식 논란은 첫 주민 발의 주민투표로 이어지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앞서 올 상반기에 터져나온 '반값 등록금' 문제는 대학생들을 광화문 촛불시위로 내몰았고 정부가 부실 대학 퇴출 작업을 서두르게 하는 발단도 됐다. 서울대생들은 법인화 반대를 주장하며 역대 최장 기간인 28일 동안 총장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KAIST에서는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징벌적 등록금제'를 폐지하는 등 개혁에서 한발 물러섰다.

이처럼 올해는 교육계에 유난히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교육계 원로인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83 · 사진)을 만나 최근 교육계 현안들의 원인과 대책을 들었다. 조 전 총장은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와 이념이 교육계에 너무 많이 개입한 것"이라며 "순수성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후보 매수 의혹,무상급식 논란,반값 등록금 등 사회 전체적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현안들이 많습니다.

"요즘의 교육계를 보면 서글프고 안타깝습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은 다음 세대를 기르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보다 청렴해야 하고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또 독립적이어야 하죠.하지만 지금 교육은 정치가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왜 교육감이 되려면 정치 세력을 등에 업어야 합니까. 교육에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이 들어가선 안 됩니다. 학생들을 편가르기하지 말자고 하면서 어른들이 오히려 편가르기가 어떤 것인지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육계에 이런 부끄러운 문제가 없어지려면 교육계는 물론 외부에서도 순수성을 되찾게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곽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무엇보다 도의적인 책임부터 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아서 처신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감은 도덕적으로 누가 봐도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초 · 중 · 고등학교를 통솔하는 자리 아닙니까. 교육감직을 두고 돈거래를 한 사람이 내리는 영(令)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그러고서도 아무일 없이 교육감직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상식의 문제입니다. 교육감은 정치하는 자리가 아닌데도 선거로 뽑다 보니 부작용이 너무 많습니다. 선거로 뽑은 교육감들이 계속 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곽 교육감이 교육감직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게 바로 정치와 이념이 교육에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육에 애정과 관심이 있다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이념을 갖고 접근하다 보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의견도 듣지 않습니다. 설득이 안 되는 거죠.교사들 사이에 파벌이 생기고 학생들도 그런 데서 영향을 받습니다. 전면 무상급식을 통해 편가르기 하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들이 편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

▼교육감 선거 제도를 보완하자는 논의도 많습니다.

"교육감은 정치인이 할 자리도 아니고 교수가 나설 자리도 아닙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교감 · 교장을 하면서 학교 행정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할 자리입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경영학 교수가 하는 게 낫겠습니까,아니면 말단 직원부터 차곡차곡 경험을 쌓은 기업인이 하는 게 낫겠습니까. 교육감을 임명하던 것에서 선거제로 바꾼 것은 임명제가 부작용도 있었고 선거제가 가진 장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감 요건을 너무 완화했습니다. 최소한 20년은 교육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

▼그렇다면 교육계가 나아갈 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우선 초 · 중 · 고 교육부터 얘기해 봅시다. 요즘 교육정책이 학생들 학업 부담을 덜어주고 창의적으로 키우려고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찬성입니다. 일관적으로 가는 것이 관건입니다. 다만 교사들이 뚜렷한 국가관과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애국가 가사,국민의례 맹세대로만 하면 좋겠습니다. 정치적인 것은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만 가르치면 됩니다. 진보니 보수니 이런 것은 성인이 돼서 스스로 판단하고 배워야 합니다. "

▼젊은 층에서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도 교육의 문제일까요.

"교육 과정에서 이념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도 있겠죠.하지만 젊은이들이 정부와 기득권에 반발하는 것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오히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지요. 젊은이들의 비판과 지적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정부는 무슨 문제가 불만을 낳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개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

▼올해는 '반값 등록금'부터 부실 대학 구조조정,복지 포퓰리즘까지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제기됐습니다.

"무상으로 밥도 주고 교육도 해준다고 하면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공짜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노인 표도 점점 많아지는 마당에 이러다간 노인 되면 한 달에 100만원씩 주겠다는 정책도 나올 판입니다. 하지만 복지는 그만큼 해낼 수 있는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처럼 복지정책이 쏟아지면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은 얼마나 더 늘겠습니까. 유리지갑 직장인들의 부담은 또 얼마나 커지겠습니까. 정치인들이 그렇게 정책을 내놓으면서 재정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 못봤습니다. 복지정책을 펴려면 국회의원들부터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해야 합니다. "

▼대학 구조조정 문제는 어떻게 봅니까.

"대학 운영도 시장경제 원칙이 작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교육을 잘해서 취업률이 높아지면 학생이 몰리고 등록금도 올라가게 마련이고 반대인 대학은 도태하는 것이 자연스럽죠.하지만 지금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대학에 안 보내면 부모 노릇을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한계 대학들까지 등록금 장사로 먹고 살게 해주고 있습니다. 대학 나왔다고 취업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닌데 사회적인 비용이 너무 큽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대학 나온 사람만큼 대우받을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시급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등록금 문제나 대학 구조조정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죠."

▼교육계에서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요.

"노태우 정부 말기에 교육부 장관을 13개월 했습니다. 정권 말기라 임기가 짧은 것을 알고 있었으니 전임 장관이 했던 일 마무리하고 후임 장관을 위해 예산 확보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국 이래 교육부 장관 평균 임기를 나중에 확인해 보니 11개월이 채 안 되더군요. 명색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교육 분야 수장인데 적어도 대통령 임기만큼은 직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고(故) 최형섭 씨가 과학기술처 장관을 7년6개월 했습니다. 그때 대한민국 경제부흥을 이끈 과학기술의 기틀이 마련됐습니다. 교육 장관도 오래 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


◆ 조완규 前 총장은…교육부 장관 때 대학 구조조정 모델 제시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83)은 32대 교육부 장관(1991~1992년)을 지낸 교육자이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한국생물과학협회장을 역임한 과학자다. 서울대 생물학과에서 학사와 석 · 박사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하버드대,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교환교수 등으로 연구와 강의를 했다. 1987~1989년 제18대 서울대 총장,1988~1990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교육부 장관 시절 사학 비리로 몸살을 앓던 인천대를 시립화하는 데 성공,대학 구조조정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교육계에 제시되고 있는 '부실 사학을 국가나 지자체가 인수해 국 · 공립화하자'는 방안도 그 뿌리는 인천대 시립화에서 출발한다. 조 전 총장은 "당시에는 인천 시민들까지 한마음으로 인천대 정상화를 요구해 시립대 전환이 수월했다"며 "등록금 장사에만 의존하는 부실 대학을 우량 대학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 전 총장은 서울대에 위치한 국제백신연구소(IVI) 유치 과정에서 한국후원회장을 맡아 한국 최초의 국제기구 유치에도 공헌했다. IVI는 콜레라,말라리아 등 후진국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병의 백신을 개발해 싼 값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유엔(UN) 산하 기구다. 조 전 총장은 현재도 IVI 후원회의 상임고문을 맡아 제3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백신 개발에 힘쓰고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