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의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형상화했습니다. 모든 사물이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열린 공간에 있는 것처럼 제 조형물도 열린 형태입니다. 조형물이 공간을 크게 휘젓는 것을 체험할 수 있어요. "

대성산업의 신도림동 복합쇼핑문화공간 디큐브시티에 17m 높이의 대형 조형물을 설치한 산업디자이너 론 아라드 씨(61)는 "2만4000개의 LED조명에서 빛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이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우리 모습 같다"고 말했다. '테크노 음유 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최고 화두는 인간,소통,감성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태생인 그는 어려서 런던으로 이주했고,1983년 캐롤라인 토먼과 함께 디자인공방과 쇼룸을 갖춘 디자인 회사 'One-Off Ltd'를 설립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필립 스탁,아릭 레비와 독일 미술출판사 타쉔이 선정한 세계 3대 디자이너로 뽑혔다.

"감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디자인은 의미없죠.전원을 켜지 않은 LED가 단순한 물체에 불과하듯 말이죠.그래서 전 조형예술과 입맞춘다는 느낌으로 일을 한답니다. "

디큐브시티의 야외 테라스에 설치된 그의 조형물 제목은 '소용돌이(Vortex)'.LED조명 2만4000개를 활용한 이 작품은 직경 8.5m,폭 8.5m,높이 17m로 무게가 11t에 이른다. 하늘에서 대지로,대지로부터 하늘로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붉은색의 거대한 리본 형태를 갖추고 있다. 형형색색의 자동차와 동물,걸어가는 사람,일상의 시어,색깔로 점치는 운세 등 다양한 콘텐츠를 LED 미디어 캔버스에 구현했다. 관람객들은 콘텐츠를 선택해 감상할 수도 있다.

"한국만큼 사람들이 열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곳도 없죠.빠르고 경이롭게 떨어지는 유성처럼 말예요. 한국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

그런 그가 3년 전부터 꼭 한번 디자인해보고 싶은 한국 문화가 있었다. 바로 '구로'.첨단기술의 장으로 변모해가는 구로구를 빛으로 묘사한 그는 "끊임없이 반짝반짝 생성되고 소멸되는 모습은 구로 여정의 표현"이라며 "서울의 역동성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처음 시도한 미디어 작품이 '구로의 횃불'을 상징합니다. 빛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토네이도처럼 공중을 타고 올라가는 형상은 테크놀로지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죠.소용돌이가 일종의 하드웨어라면 LED가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은 소통과 감성의 연결고리입니다. "

그의 디자인 특징은 유려하고 힘이 넘치는 곡선미와 형태를 해체하는 파격미다. 30년 전부터 금속으로 작업해온 그는 철판을 둥글게 구부려 만든 '착한 의자',달팽이 모양의 곡선 선반을 갖춘 책꽂이 '책벌레',강낭콩 모양의 젤리 과자를 반으로 접은 듯한 '보디가드' 등 이색적인 작품을 내놓아 유명해졌다. 그의 작품은 런던,파리,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에 설치돼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