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식사를 걸렀다. 단식이다. 아홉 끼 동안 먹은 거라곤 물과 약간의 꿀물이 전부다.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될 듯싶다. 어릴 때부터 자주 체했다. 툭하면 먹은 게 얹히고 내려가질 않아 고생하곤 했다. 하지만 약은 잘 먹지 않았다. 애당초 약을 멀리 하는 성향도 있지만 특히나 체증엔 약이 잘 듣는 것 같지 않아서다. 그보다는 경락을 꾹꾹 눌러 주거나 굶어서 속을 비우는 게 훨씬 나았다. 이번 역시 약은 물론 병원에도 가지 않고 그저 속을 비우며 기다리는 중이다. 얹혀 있던 게 내려가면 몸이 알아서 기능을 회복하리라 기대하면서.

이런 날씨에 며칠씩이나 곡기를 끊으면 굉장히 힘들 것 같지만 의외로 지낼 만하다. 나른하기는 하지만 평소에도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므로 약간 기운 없는 듯한 이런 기조가 내겐 익숙하기도 하다. 게다가 종종걸음 쳐가며 빨리빨리 일할 때는 놓치고 있던 느릿함 같은 건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며칠씩이나 굶고도 평소처럼 출근해서 일하고 회의하고 사람 만나는 데 별 지장이 없는 건 뭘까. 그건 결국 그동안 내 안에 뭘 많이 쌓아 두었다는 얘기다. 계속된 과식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대체로 많이 먹었다. 사실,밥 반 공기쯤을 먹으면 배가 불렀다. 그게 내 정량이다. 하지만 거기서 숟가락을 놓은 적은 별로 없다. 입맛 도는 반찬이 눈앞에 있고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니 매번 과식을 했다. 어쩌다 한두 번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매번의 식사가 그랬던 것 같다. 몸이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한 것이고 그래서 탈이 난 것이다. 알면서도 계속 그래 왔으니 참 미련했다.

또한 균형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균형을 지향한다고 했던가. 한동안 과했으니 줄이는 작업을 하는 거다. 일종의 다운사이징이랄까. 지금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이런 거라면 약을 찾지 않고 굶어서 속을 비우기로 한 것은 그나마 잘한 결정이다.

예전에 자주 산에 다닐 때의 기억이 난다. 산에 올랐다 내려오면 얼굴이 한결 맑아져 있곤 했다. 흘린 땀으로 노폐물이 빠져나가 그렇다는 설명은 너무 건조하다. 그보다는 도시를 떠나 다만 몇 시간이라도 고민을 잊고 욕심도 내려놓고 그저 몸의 리듬에 따라 걸은 것이 몸에 맑은 기운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짧지만 이번의 단식을 통해 그런 경험을 다시 하고 싶다. 그간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내 얼굴이 탐탁지 않았다. 나이 든 중년 여자의 얼굴이어서가 아니라 욕심이 잔뜩 낀 탁한 눈빛의 얼굴인 게 영 못마땅했다. 다만 며칠이지만 속을 비우고 과욕도 덜어 내 절제를 되찾는다면 얼굴도 다시 맑아질까. 그랬으면 좋겠다. 마침 날씨도 제법 선선해지고 하늘도 맑고 높은 것이 가을이 코앞이지 않은가. 가을은 맑은 얼굴로 맞이하고 싶다.

최인아 < 제일기획 부사장 namoo.choi@sams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