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은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얼짱도 몸짱도 아니었다. 뽀얀 피부의 얼굴은 다소 여성적이어서 큼직한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했고 눈동자의 한쪽은 검정색,다른 한쪽은 푸른색으로 짝짝이었다. 남성성의 상징인 수염도 듬성듬성해 부하들과 비교됐다. 자존심이 상했던지 그는 몇 가닥 안 되는 자신의 수염을 아예 말끔하게 면도하는 길을 택했다.

키는 건장한 마케도니아 남성의 표준에 못 미쳐 아주 땅딸막했는데 그나마 다부진 근육질의 신체가 볼품없는 외모의 약점을 가려줬다.

마케도니아를 평정하고 페르시아를 제압한 대제국의 용맹한 제왕의 용모치고는 초라했다. 알렉산더 대왕 자신도 그것이 방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군주로서 커다란 약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도력에 걸맞은 황제상을 정립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를 위해 당대 최고 조각가인 리시포스와 화가 아펠레스를 중용,고도의 이미지 전략을 구사했다.

먼저 정복지 곳곳에 자신의 조각상을 세우게 했다. 태양신 헬리오스를 연상시키게끔 사자 갈기 같은 머리에 움푹 파인 눈으로 묘사하도록 해 자신의 군사와 백성들을 압도하는 강렬한 인상을 풍기게 했다. 이런 제왕의 의중을 완벽하게 만족시킨 것은 조각가 리시포스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묘사력을 자랑했던 그는 인체를 교묘히 왜곡함으로써 모델에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했다.

그는 선배들이 정립한 인체 비례론을 폐기하고 얼굴은 작게,신체는 상대적으로 길게 묘사함으로써 모델의 키가 훨씬 더 커보이게끔 했다. 숏다리 제왕이 대만족 했음은 물론이다. 알렉산더는 이후로 자신의 초상 조각은 오로지 리시포스만이 제작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자신의 최상의 이미지를 통일성 있게 유포하기 위한 조치였다.

화가 아펠레스에 대한 신임도 남달랐다. 한번은 그가 자신의 애첩인 캄파스페의 초상화를 그리다 그만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는데 알렉산더는 그 사실을 알고도 화를 내기는 커녕 자신의 애첩을 그에게 흔쾌히 선물로 줄 정도였다. 아펠레스는 완벽한 묘사력과 우아함을 겸비한 것으로 유명했다. 리시포스가 알렉산더 대왕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 이미지를 전파하는 데 기여한 것에 비해 아펠레스는 대왕의 군사적 업적들을 연극적 구조 속에 묘사해 영웅성을 부각시키는 데 한몫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의 전투' 모자이크는 아펠레스의 작품을 모델로 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제왕을 물리치는 영웅으로 묘사됐다. 그의 얼굴은 리시포스의 초상조각에서 보듯 헝클어진 사자 갈기 같은 모습이고 눈빛은 상대방을 얼어붙게 할 만큼 강렬하다.

알렉산더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은 상당한 효과를 거둔 듯하다. 그 점은 알렉산더 사후 정복지를 나눠 가진 그의 부장들이 하나같이 대왕의 이미지 전략을 벤치마킹,자신을 영웅적으로 미화한 초상 조각을 영토 곳곳에 세운 데서 잘 드러난다. 동 · 서양을 아우르는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건설 이면에는 그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