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IFA가 개막한 지난 2일 독일 베를린.아침 일찍 이곳을 찾은 국내 1위 휴대폰 케이스 기업 인탑스(대표 김재경)의 김근하 상무(35)는 행사장 지도를 한번 살펴본 후 미리 짜 놓은 동선에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재경 대표의 아들인 그는 삼성전자와 소니 등 글로벌 전자기업들의 부스를 찾아 스마트폰,태블릿PC,3D 스마트 TV 등 최신 정보기술(IT) 트렌드를 일일이 점검했다. 모르는 건 물어보고 중요한 건 메모했다.

5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6일 귀국한 김 상무는 "이전에는 대표님이 직접 다녔지만 4년 전부터는 제가 전시회를 쫓아다니고 있다"며 "CES는 몇 번 갔어도 IFA는 이번이 처음인데 몸은 힘들지만 배울 게 참 많았다"고 평가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 이어 중견기업도 속속 2세 경영 채비에 나서면서 2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외 사업장과 글로벌 전시회를 누비며 현장 감각을 키우는 것은 기본이고 부자(父子)가 함께 회사 '세일즈'에 나서는 식으로 경영수업 방식도 다변화 · 글로벌화하고 있다.

김 상무가 인탑스에 합류한 것은 2008년.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후 인탑스에서 부장으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현재 기획총괄 상무인 그는 토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 업무를 챙긴다. 사내에서는 "부지런한 게 아버지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에는 주력 사업과 연관된 사업을 안착시키는 성과를 냈다. 김 상무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도한 사업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주 뵙진 못하지만 대표님이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고 귀띔했다.

국내 1위 백라이트(BLU · LCD 광원 부품) 기업 이라이콤(대표 김중헌)의 김성익 상무(30)는 작년부터 회사 일을 배웠다. 2005년 미국 카네기멜론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증권에서 2년여간 인수 · 합병(M&A) 자문 업무를 경험한 후 회사에 합류했다. 부친인 김중헌 대표와 함께 매월 1주일 정도는 중국에서 보낸다.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사업장을 챙기면서 동시에 세계 최대 시장으로 우뚝 선 '중국 스터디'를 위해서다. 올 상반기에는 부자가 나란히 회사 '세일즈'에 나섰다. 2박3일간 홍콩과 싱가포르를 돌며 20여곳이 넘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IR)를 진행했다. 김 대표가 2011년 경영계획을 큰 틀에서 짚어주고 김 상무는 세부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식으로 힘을 합쳐 적잖은 성과를 내고 돌아왔다.

삼성전자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 회장사인 이랜텍(대표 이세용)도 2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세용 대표의 아들인 이해성 부장(32)도 유학파다. 캐나다 토론토대 졸업과 함께 2006년 입사 후 중국 톈진 법인에서 1년간 현장 경험을 쌓았다.

본사 기획 · 관리부장으로서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중책을 맡은 그는 IFA 전시회장에서 5일째 'IT 삼매경'에 빠져 신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느라 귀국하지 않고 있다. 오너 2세답지 않게 겸손하고 직원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