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며칠 후면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추석은 중추절 가배 한가위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농사일로 바쁜 일가친척들이 모여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올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 행사다.

어린 시절의 추석은 요즘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다. 풍성함이 가득한 황금 들녘,햇빛에 빨간색을 더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매달려 있는 홍시,그리고 친구들과의 추억이 깃든 코스모스길….지금도 떠올리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당시 잘 그려진 가을 풍경 속의 주인공처럼 먼 미래의 행복을 꿈꾸고 '평생을 함께할 나의 반쪽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라는 막연한 상상도 하며 동네 친구들과 너른 들판을 쏘다녔다. 한없이 행복했던 시절이고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사람들 마음 속에 넉넉하게 자리잡았던 마음의 여유를 요즈음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복지 포퓰리즘 논쟁부터 빈부 격차,청년실업,공생 발전 등 세대 간 · 계층 간 갈등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존중과 배려는 희미해져 가고 거친 대립만이 눈에 가득하다.

이런 시기에 '고향에서 어떤 마음으로 짧은 추석 명절을 보내고 올까?'하는 생각을 하며 필자는 이렇게 다짐했다. 우선 어린 시절 좋은 추억 속에서 나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뒷동산에 올라 '야호'하고 소리를 질러볼 생각이다. 돌아오는 메아리와 함께 서로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나 자신이 걸어온 시간들을 애써 얘기하기보다 그들이 꺼내 놓는 시간의 흔적들을 머리를 끄덕이며 들어 보려고 한다. 거기서 뭔가 재미있는 것,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듣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이 어린 조카나 후배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도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한때 성공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의 얘기 등을 들려 줄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벌써 풍요롭다.

이번 추석에도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거나,이런저런 현실적인 어려움 등으로 고향 가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가 잘 안 보이는 것은 너무 눈부시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그들이 되새겨봤으면 한다. 고향의 품안에서 어릴 적 꿨던 꿈을 되찾고 추억의 옛 길을 걸으며 새로운 미래를 그려 봤으면 한다.

고향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겠지만 치열한 도회지 삶의 부산물인 남들과의 크고 작은 갈등,미움 등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생채기를 모두 씻어내고 싶다. 고향의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한가위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가슴에 담아서 돌아오고 싶다.

벌써 내 마음은 풍성한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행복한 만남'을 위해!

노학영 < 코스닥협회 회장 / ㈜리노스 대표 hyroh@kosdaqc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