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닷새 동안 정치권을 들끓게 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6일 서울시장 출마 포기라는 극적 카드를 꺼냈다. 여론조사 지지율 40~50%인 안 원장이 지지율 5%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슴없이 양보하는 파격을 통해 의도와 상관없이 가장 극적 효과를 거둔 셈이다.

안 원장은 이날 후보단일화 기자회견에서 "박 변호사가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당장 10 · 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안철수 열풍'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검증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 지지층이 어느 정도 박 변호사에게 옮겨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박 변호사가 인지도에서 안 원장에게 크게 뒤처지는 한계를 이번 단일화 과정과 지지선언을 통해 일정 부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 원장의 양보가 박 변호사의 외연확장을 도와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박 변호사의 지지율이 단기간에 20%대까지 치고올라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도 박 변호사의 낮은 인지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박 변호사의 인생역정이 결코 간단치 않아 많은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만큼 야권 단일후보 선출 과정을 통해 서울시민들에게 충분히 호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박원순의 단일화가 민주당 내 후보 교통정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출마 여부를 고민 중인 한명숙 전 총리는 이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박 변호사를 만나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한 전 총리가 본인의 출마보다는 안 원장의 양보를 받아낸 박 변호사를 단일 후보로 미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친노그룹 한 관계자는 "한 전 총리는 이번 주 안에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출마할 땐 야권 단일화 과정은 한 전 총리,천정배 최고위원 등 민주당 주자 간 경선을 거친 뒤 박 변호사 등이 참가하는 형태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한 전 총리가 불출마로 돌아서면 이미 출마를 선언한 천 최고위원 외에 원혜영 의원,박영선 정책위의장,이인영 최고위원 등이 출마할 가능성이 높아 경선주자들이 한층 다양해질 수 있다. 천 최고위원 등은 당내 경선 후 야권단일화를 고수하고 있어 손학규 대표로서는 당내 주자들 간 교통정리도 고민거리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