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러분이 결단을 내릴 때입니다. 통 크게 양보해주십시오.그래야 동반성장 취지와 맞지 않겠습니까. "

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16층 '뱅커스클럽'.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의 입에서 '최후통첩'이 떨어진 것은 간담회를 시작한 지 1시간20분가량 지난 오전 11시50분 께였다.

김 위원장이 "업종별로 마지막 협의를 해보세요"라는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비웠다. 20분 뒤 김 위원장이 자리에 돌아오자 공정위 직원들은 A4용지 한장짜리 '유통 · 협력업체간 동반성장 합의문'을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나눠줬다.

합의문의 핵심내용은 '유통업태별 판매수수료 3~7%포인트 인하'였다. 이철우 롯데백화점 사장 등 업계 대표들이 "수수료 인하를 한시적으로만 적용하자"며 반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요된 '자율 합의'…부작용 우려

곽세붕 공정위 대변인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논란은 있었지만 유통업체들과 자율적으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유통업체들이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하기 위해 '통큰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통업체들의 얘기는 다르다. 정부의 거듭된 압박에 못 이겨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합의했을 뿐 자율적으로 수수료를 내린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수수료가 높다면서도 왜 백화점에 들어오려고 기를 쓰는지 아느냐"며 "명동이나 압구정동 한복판에 로드숍을 낼 때 내는 임대료보다 백화점 수수료가 저렴한 데다 그만큼 매출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원리를 왜곡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예컨대 연간 거래액이 50억원 미만인 기업에 대해서만 일괄적으로 수수료를 7%포인트 깎아줄 경우 매출이 작을수록 수익성이 좋아지는 왜곡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굳이 매출을 늘리려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획일적인 판매수수료 인하를 강요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공정위의 역할은 '직접' 기업들의 팔을 비트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 감시를 강화하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알려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통업체 수익성 하락할 듯

유통업체들은 내달부터 판매수수료를 낮추면 기업의 수익성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번 합의안에는 판매수수료 인하 대상이 되는 중소기업 기준을 정하지 않았지만,공정위는 내심 '각 유통업체와의 연간 거래액이 50억원 미만인 업체'를 인하 대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에선 1600여개 협력업체 중 500여개가 해당한다. 롯데마트에서도 1000여개 협력업체의 90%가량이 50억원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기준과 인하폭이 결정되지 않은 만큼 손실액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지만 대략 전체 영업이익의 3~5%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며 "작년 영업이익이 7948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수익 감소폭은 200억~4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3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던 신세계 역시 200억~300억원 안팎의 수익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유통업체들이 수수료 인하에 따른 수익 감소를 다른 데서 보전하려고 할 텐데 그럴 때마다 계속 규제할 수 없지 않느냐"며 "정부는 중소기업이 자체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상헌/조미현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