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3% 올라 억제 목표치인 4%를 훌쩍 넘어 5%대에 진입했다. 이쯤 되면 물가 불안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국은 채소와 금반지를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꼽았다. 기록적인 호우로 채소 가격이 급등했고 국제 금 가격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채소의 작황이 나아져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상승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를 보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6월 3.7%,7월 3.8%,그리고 8월에는 4.0% 상승했다.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물가 상승에 대한 부문별 기여도를 보면 낙관론을 펴기가 더욱 어렵다. 물가 상승 기여도는 물가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항목 가운데 각 부문이 전체 물가 변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통계청의 발표 자료를 보면 8월의 경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5.3% 가운데 농수축산물 기여도는 1.2%포인트,공업제품 기여도는 2.25%포인트,서비스 부문 기여도는 1.82%포인트였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가운데 농수축산물이 22.5%,공업제품은 42.2%,서비스는 34%의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이를 6,7월과 비교하면 농수축산물은 18%에서 20% 선으로,다시 22.5%로 높아진 것이고 공업제품은 41.6%에서 40.6%로 다소 낮아졌다가 42.2%로 높아진 것이다.

다만 서비스 부문만 비중이 39% 선에서 단계적으로 낮아졌다. 이는 8월 중의 높은 물가 상승이 채소류 때문만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봄 한파의 영향으로 감소했던 농산물 공급이 요즘 다시 늘면서 가격이 안정을 찾았지만 소비자물가는 공산품과 서비스 부문의 주도로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이 같은 상황이 9월 이후에도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시작하면 심리적 요인이 물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물가-임금의 악순환(price-wage spiral)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당국은 돌잔치의 선물 목록에서 기피 대상인 금반지를 소비자물가지수 구성 항목에서 제외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 금반지 하나로 물가가 안정되겠는가. 당국은 애써 낙관론을 펴고 금반지를 빼서 위안 삼으려 하지 말고,지금이라도 물가에 대한 꼼꼼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 교수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