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어요"…'뉴욕시장의 2001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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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TV '다큐 10+'는 오는 9일 밤 11시10분 9.11 테러 1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뉴욕 시장의 2001년 9월 11일(원제 Giuliani's 911)'을 방송한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어느 덧 10년이 흘렀다. 미국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테러 공격. 특히 뉴욕의 상징물 세계무역센터(WTC)는 납치된 민간항공기 2대의 충돌로 붕괴되고 만다. 사상 초유의 테러 공격을 그날 당시 뉴욕 시장을 지냈던 루돌프 줄리아니는 어떻게 보냈을까.
2001년 9월 11일 뉴욕은 화창했다. 줄리아니는 친구들과 아침 식사를 하던 도중 테러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세계무역센터(WTC)로 향했다. 줄리아니는 통신두절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붕괴 위기에 처한 건물 내부에 갇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그의 행동을 두고 "위기 대응의 책임자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것은 경거망동"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몇몇 사람들은 줄리아니가 소방당국과 경찰의 지휘본부를 따로 둬 지휘체계 이원화를 허용한 것 때문에 소방관들의 희생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 부시 대통령은 강연차 방문했던 플로리다에서 에어포스원의 기수를 돌려 멕시코만으로 나가 사태를 관망했다. 부통령 체니도 백악관 지하벙커에 대피한 상태였기 때문에 테러 현장에 있었던 줄리아니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위기대응을 책임진 공직자로 비춰진다. 현장에 머물며 시민들과 함께 위험에 맞선 리더십이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도 했다.
줄리아니는 당시 상황에 대해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사건이 닥쳤다는 걸 깨달았다. 한 남자가 101층인지 102층에서 뛰어내렸다. 모두 내 결정을 기다렸다.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테러현장인 그라운드제로에는 곧 추모공원이 문을 연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그 상처를 기억한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뉴욕을 책임지기 위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결정을 내려야했던 줄리아니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한경닷컴 부수정 기자 oasis@hankyung.com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어느 덧 10년이 흘렀다. 미국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테러 공격. 특히 뉴욕의 상징물 세계무역센터(WTC)는 납치된 민간항공기 2대의 충돌로 붕괴되고 만다. 사상 초유의 테러 공격을 그날 당시 뉴욕 시장을 지냈던 루돌프 줄리아니는 어떻게 보냈을까.
2001년 9월 11일 뉴욕은 화창했다. 줄리아니는 친구들과 아침 식사를 하던 도중 테러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세계무역센터(WTC)로 향했다. 줄리아니는 통신두절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붕괴 위기에 처한 건물 내부에 갇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그의 행동을 두고 "위기 대응의 책임자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것은 경거망동"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몇몇 사람들은 줄리아니가 소방당국과 경찰의 지휘본부를 따로 둬 지휘체계 이원화를 허용한 것 때문에 소방관들의 희생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 부시 대통령은 강연차 방문했던 플로리다에서 에어포스원의 기수를 돌려 멕시코만으로 나가 사태를 관망했다. 부통령 체니도 백악관 지하벙커에 대피한 상태였기 때문에 테러 현장에 있었던 줄리아니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위기대응을 책임진 공직자로 비춰진다. 현장에 머물며 시민들과 함께 위험에 맞선 리더십이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도 했다.
줄리아니는 당시 상황에 대해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사건이 닥쳤다는 걸 깨달았다. 한 남자가 101층인지 102층에서 뛰어내렸다. 모두 내 결정을 기다렸다.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테러현장인 그라운드제로에는 곧 추모공원이 문을 연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그 상처를 기억한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뉴욕을 책임지기 위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결정을 내려야했던 줄리아니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한경닷컴 부수정 기자 oas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