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석 달은 지난 줄 알았다. 8월24일 서울시 주민투표가 끝난 게.서울시장이 물러나고 서울시교육감은 피의자 신분이 됐다. 국회가 인정 넘치는 곳임을 보여준 강용석 구하기는 먼 옛날 일 같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이 정해지기 무섭게 이른바 명망가들은 줄줄이 출사표를 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졌다. 무(無)당파를 내건 안철수 원장은 조사 때마다 40~50% 지지율로 기성 정당들을 발칵 뒤집었다. 신드롬을 넘어 가히 안철수 쓰나미다.

그런데 닷새 만에 느닷없이 후보 단일화란다. 안 원장이 5년 같다던 닷새 동안 여야는 바보가 돼 버렸다. 최대 피해자는 시장 출마하겠다며 의원직 사퇴서 내고 서울로 이사온 의원이 아닐까 싶다. 성급한 조사기관은 안 원장과 박근혜 의원 간 대선 양자 대결구도로 여론조사까지 벌였다. 42 대 40이다.

이 모든 게 한국 정치판에선 불과 보름이면 충분하다. 뉴스가 흘러넘쳐 강을 이룬다. 적어도 뉴스가 없어 신문을 못 만들 일은 절대로 없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지루한 천국'에선 3년이 지나도 다 못 볼 뉴스들이다. 한국에서 7년을 근무한 프랑스 외교관은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역동적이고 혁신적이라고 평했다. 활력 호기심 적응력 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란 얘기다.

뭐든지 눈이 휙휙 돌아갈 만큼 빠르다. 산업화 민주화가 그렇고 요즘 복지포퓰리즘이나 반(反)기업 조장도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휴대폰 교체주기도 27개월(해지는 19개월)로 일본(46개월)의 절반으로 짧다. 자동차도 빠르면 3년,길어야 5~7년이면 바꾼다.

좋게 말해 역동적이지 실상은 다이내믹 코리아가 아닌 다이너마이트 코리아다. 뉴스 과잉은 정치 과잉에서 비롯됐고,그 기저엔 한국인의 심리코드인 새것 콤플렉스가 자리잡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자기가 속한 상황에 대한 투철한 역사의식이 없기에 새것 콤플렉스가 생겨난다고 했다.

기존 정치는 늘 낡고 바꿔야 할 대상으로 보인다. 정치판에는 죄 없는 자 없다고 전 국회의장이 실토하지 않았나. 정당 수명이 평균 4년 정도에 불과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14년 된 한나라당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은 유효기간이 지나 변질 단계에 접어든 지 오래다.

정치판을 뒤흔든 안철수 쓰나미도 뒤집어 보면 한국 정치의 비극이요,새것 콤플렉스의 산물이다. 기존 정당들의 행태는 신물이 난다. 그런데 진흙탕 정치판에 발을 담근 적 없는 새 인물이 나타났다. 게다가 최신 스마트폰이나 화려한 신차 같은 이미지이니 대중들은 열광한다. 바꿔 보고 싶다.

그런 인물일수록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대치 위반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다. 맏며느리(기존 정당)의 하찮은 실수도 호되게 야단치는 시어머니가 막내며느리(뉴 페이스)에겐 관대하게 마련이다. 기대치가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형성된 것이 50% 지지율이다. 보수 · 진보 · 중도의 3 대 3 대 4 구도에서 중도와 양극의 일부가 모였다. 이대로라면 대권도 꿈꿀 만하다. 하지만 솔로몬이 갈파했듯이 좋든 싫든 이것도 다 지나갈 것이다.

안철수의 가세로 내년 말 대선까지 16개월간 정치 대장정은 어디로 흘러갈지 아예 예측 불가다. 국민들은 청심환이라도 챙겨둬야 할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가가 기업 내재가치에 수렴하듯,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도 그의 본질가치에 수렴할 것이란 점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