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가 22개월간 재정위기와 싸우며 진행해온 '고난행군'이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아일랜드 이탈리아로 이어지더니 프랑스까지 위협 중이다. 그러나 국가별 이해가 갈리며 공조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사분오열되면서 유로존 붕괴의 시나리오까지 떠돌고 있다.

◆초읽기에 몰린 이탈리아

이탈리아가 유럽경제 붕괴의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정부는 부가가치세를 인상키로 하는 등 긴축안을 강행했다. 이에 로마 등 이탈리아 주요 도시는 긴축안에 반대하는 노동계의 총파업으로 대중교통과 은행,병원 등의 공공업무가 전면 마비됐다.

이달에만 620억유로 규모의 국채만기가 몰린 이탈리아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날 이탈리아 10년물 국채금리는 연 5.48%로 역대 최고 수준에 육박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신용평가사들이 조만간 이탈리아 신용등급을 하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탈리아에서 디폴트가 발생하거나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돈이 얽히고 설킨 유로존 국가들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발을 빼는 독일

유로존 재정위기를 책임질 수 있는 국가는 독일밖에 없다. 그러나 독일 내에선 "왜 다른 나라의 빚을 대신 떠맡냐"는 반대여론이 거세다. 설상가상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도력이 위기에 처했다.

이날 그리스 2차 구제금융안에 대한 상원 표결이 가결되긴 했지만 집권연정에서 25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이달 29일 예정된 하원 표결도 낙관할 수 없다. 집권 기민당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6차례 연속 패배,메르켈 총리의 지도력에 심각한 흠집이 생겼다.

독일 정치권과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국가 간 대립도 노골화되고 있다. 재무장관은 그리스에 대해 "긴축을 똑바로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고,독일 출신 EU(유럽연합)집행위원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유럽중앙은행(ECB)을 속였다"고 비판할 정도로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유럽은 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나

근본적으로 경제력 격차가 큰 북유럽 국가와 PIGS 국가가 단일통화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모순'을 해결할 묘책이 없다. PIGS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개별적으로 환율을 조정할 수도 없다. EU 27개국이 상호견제만 할 뿐 뚜렷한 리더십을 찾기도 어렵다.

이날 독일,네덜란드,핀란드 등 3개국은 그리스 구제금융 시행의 걸림돌이 된 '담보협약 문제'를 논의하는 회담을 가졌지만 해법을 찾지 못했다.

당장 위기에 몰린 이탈리아의 덩치가 너무 큰 점도 문제다. 재정위기 대응책인 유로존재정안정기금(EFSF)은 이탈리아가 쓰러질 경우 최소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기금을 확충해야 한다.

◆유로존 해체될까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PIGS국가 재정이 건전화될 가능성은 사실상 '0'"라며 △재정위기국의 유로존 퇴출 △유로존 자체의 해체 △유로존 전체가 '진흙탕'속에서 모두 고전하는 것의 세 가지 옵션이 있다고 전망했다. 어느 시나리오가 실현되든지간에 '유럽 경제 빙하기'를 피하기 어렵다는 게 현지 언론의 시각이다.

한편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EU의 사투도 이어지고 있다. EU 주요국 재무부 관계자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동을 갖고 금융권 자금 확충 방안을 논의했다. 이달 중순 폴란드에서 열릴 EU 비공식 재무장관 회의 준비 차원에서 열린 이날 회의에선 "EU가 유로존 금융권 자본 확충을 위해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 없고 필요하다면 민간자본이 투입될 것"이라는 방침을 정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이날 그리스 지원 및 EFSF 확충방안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독일의회 내 반(反) 유로존 입장의 페터 가우바일러 기독사회당 소속 의원 등 6명이 제기한 위헌 소송에 따른 것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