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바타ㆍ다크나이트 '대박' 비결은 온·오프 넘나든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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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현실 세계 자유자래로
세계 엔터테인먼트 거장들의 창조적 열정·전략 엿보기
콘텐츠의 미래ㅣ프랭크 로즈 지음ㅣ최완규 옮김ㅣ책읽은수요일ㅣ448쪽ㅣ2만원
세계 엔터테인먼트 거장들의 창조적 열정·전략 엿보기
콘텐츠의 미래ㅣ프랭크 로즈 지음ㅣ최완규 옮김ㅣ책읽은수요일ㅣ448쪽ㅣ2만원
2007년 미국의 한 네티즌이 정체불명의 이메일을 받았다. 제과점에 들러 케이크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케이크 상자를 받아 보니 조그마한 행낭이 나온다. 그 안에는 조커 카드와 함께 휴대폰,충전기,전화를 켜라는 메모,또 다른 전화번호 등이 들어 있다.
배트맨 시리즈의 신작 '다크나이트' 제작진이 펼친 '대체 현실 게임'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그는 극중 악당 조커가 이끄는 은행강도단의 일원이 됐고 마케팅에 참여한 대가로 이듬해 '다크나이트' 시사회에 초대됐다. 이 마케팅에 처음 참여한 사람은 불과 수십명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이 과정을 지켜본 네티즌은 140만명이나 됐다.
이듬해 7월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미국 21개 도시에서 수수께끼와 퍼즐,보물찾기 등 '대체 현실 게임' 마케팅에 참여한 사람은 1000만명이었다. 그 결과 '다크나이트'는 배트맨 시리즈 중 최대 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에서 10억달러를 벌었다.
이 게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퍼즐을 풀려는 참가자들을 몰입시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대체 현실을 만들려고 했다. 덕분에 배트맨은 원작이 탄생한 지 69년 만에 만화나 TV,스크린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야말로 파워 콘텐츠의 제1조건이다.
《콘텐츠의 미래》는 대중을 지배하는 콘텐츠의 핵심 전략과 관련 산업의 미래를 진단한다.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게임 '심즈'의 제작자 윌 라이트,방송드라마 '로스트'의 데이먼 린델로프 작가 등 오늘날 세계 엔터테인먼트계를 움직이는 거장들의 창조적 열정과 전략을 펼쳐놓는다. 전통 미디어가 몰락하고 새 미디어가 주목받는 실태를 점검한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가 스토리텔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설명한다.
할리우드 미디어 전문가인 저자는 콘텐츠를 구성하는 핵심요소인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스토리텔링 없이 인간은 생존조차 불가능할 정도라고 인류학자들은 지적한다. 스토리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 교감을 나누는 방법으로 모든 문화에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책 영화 음악 TV 광고 게임 등은 스토리를 들려주는 미디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스토리텔링과 미디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터넷 때문이다. 인터넷은 모든 매체를 합친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게임처럼 몰입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딥 미디어(deep media)'다.
인터넷 시대에는 미디어 소비자들이 더 이상 소파에서 감자칩을 먹으며 TV를 시청하던 '카우치 포테이토'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미디어를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이로써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벽을 허물고 작자와 청중,콘텐츠와 마케팅,환상과 현실의 경계도 무너뜨린다.
'다크나이트'의 히트 배경에는 인터넷과 화학적으로 결합한 마케팅이 자리했다. ABC방송의 히트작 '로스트'는 처음으로 인터넷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TV 프로그램이었다. 빙산과도 같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해 기획자들은 그 일각만 보여줄 뿐 나머지는 관객이 구축하도록 했다. 표면적인 스토리를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전개하자 시청자들은 '로스트피디아'란 온라인 커뮤니티를 결성,내용을 해독했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거의 쌍방향으로 느껴질 만큼 시청자들과 친밀한 유대감을 갖게 됐다.
인터넷에서 한 걸음 나아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도 스토리텔링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미국 드라마 '매드맨' 캐릭터들은 드라마 제작진이 아닌 팬들이 트위터를 통해 발전시키고 확장시켰다. '심즈' 같은 게임도 작가들의 스토리라기보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몰입도가 높은 게임과 비슷하다. 흔히 게임의 보상 체계는 학습과 중독으로 이어지는 신경 화학적 메커니즘으로 일컬어진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사용자들이 참여하게 유도함으로써 보상심리를 충족시켜준다. 대체 현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스토리텔링은 역사적으로 몰입도가 높은 형식으로 진화해 왔다. 이 때문에 오늘의 참여형 미디어와 콘텐츠가 미래에는 더 많이 생겨나 보편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전통 엔터테인먼트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북미 지역의 영화티켓 판매량은 2002년 16억장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내리막길이다. 전 세계적인 음악 관련 소비도 1999년 390억달러에서 2009년 250억달러로 급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