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려면 기술을 보지 말고 사람을 봐야 한다. " "향후 정보기술(IT) 산업의 흐름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가고,앱(응용프로그램)을 거쳐 서비스로 넘어간다. "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사진)은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머레이힐 본사를 찾은 기자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또 "2,3년 후엔 지금의 10배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중학교 2학년 때인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존스홉킨스대에서 학 · 석사,메릴랜드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통신장비 분야의 벤처기업 유리시스템을 창업해 1998년 루슨트(현 알카텔-루슨트)에 10억달러를 받고 매각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001년부터 매릴랜드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가 2005년 루슨트 산하 벨연구소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가 약하다며 걱정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한국 소프트웨어 기술이 약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다 보면 하드웨어에서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로 넘어가고,소프트웨어에서 앱으로 넘어가고,궁극적으로 서비스로 넘어간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벨연구소는 앞으로 서비스 중심으로 갈 것이다. "

▼5년 ,10년 후 어떤 세상이 열리나.

"미래를 보려면 기술만 봐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봐야 한다. 그래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AT&T가 1975년 영상전화를 개발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다 일어난 얼굴을 보여주며 통화하길 꺼렸다. 길게 보면 곳곳에 센서가 장착되는 센서 네트워크 사회로 갈 것이다. 심지어 인체에도 센서가 장착될 것이다. 모든 것이 스마트해지고,서비스도 스마트해질 것이다. "

▼모바일 트래픽이 폭증하고 있고 주파수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는데 기술 혁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지금 기술로는 늘어나는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 지금 기술로 트래픽 문제를 해결하려면 5년 안에 3만개가 넘는 기지국을 추가로 세워야 하는데,허가 받기가 어려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벨연구소가 개발한 '라이트 라디오 튜브' 기술을 상용화하면 똑같은 주파수 대역에서 지금의 10배나 되는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 상용화 시점은 2013년이나 2014년쯤 될 것이다. 고스트 시그널(아날로그 TV에서 나타나는 잔영 같은 것)을 이용해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술이다. "

▼벨연구소는 노벨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하는 등 탁월한 성과를 많이 냈는데 비결이 뭔가.

"독특한 연구 문화 덕분이다. 이곳에는 '연구 자유(리서치 프리덤)'라는 개념이 있다. 일반 기업에서는 2,3년 안에 성과가 나와야 성공했다고 평가하지만 벨연구소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내는 걸 높이 평가한다. 다른 곳에서는 연구원이 좋지 않은 아이디어를 내면 상사들이 막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나쁜 아이디어라 해도 연구해 보라고 한다. "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1970년대 중반엔 이런 일이 있었다. 다들 하드웨어로 해결하는 때였는데 한 연구원이 소프트웨어로 처리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다른 곳이었다면 연구를 못하게 했을 텐데 허용했다. 그래서 나온 게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DSP)다. 작년 3월에도 한 연구원이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는데 연구를 승인했다. 그 결과 라이트 라디오 튜브 기술을 개발해냈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매년 '서프라이즈(놀랄 만한 연구 성과)'가 있다. "

뉴욕=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