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에비타 그리고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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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아르헨티나를 지난해 방문했다. 그곳의 계절은 늦은 가을.구름도 바람도 겨울을 예고했다. 마치 아르헨티나의 내일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7위 경제대국이었다. 2차대전이 끝날 때만 해도 새 문명이 태동할지 모른다는,그것도 아르헨티나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랬던 나라가 지금은 외채와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경제적으로는 생산성에 둔감해진 사람들의 일상에 젖어 있다.
한때 아르헨티나를 좋아했다. 영화 '에비타'를 본 뒤 에바 페론을 좋아하게 됐다.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애칭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아르헨티나의 고통을 에바 페론의 선심행정,즉 지나친 복지정책 탓으로 여긴다. 나도 그런 면을 부분적으로는 인정한다. 그러나 에바 페론과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현실 사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에바는 '대통령 영부인 에바 페론'보다 '소외된 이웃의 친구 에비타'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말했다.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의 어머니로,가난한 노동자의 동료로,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가로 한 평생을 살았다. 에바에게는 이것이 '삶의 존재 이유'였다. 1952년 7월26일 33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뒤에도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슬픔과 함께 꺼지지 않는 신화가 됐다.
요즘 한국에서도 복지 논쟁이 일고 있다. '포퓰리즘'이란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이를 가리켜 '민중선동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포퓰리즘이 민중선동주의는 아니다. 포퓰리즘에도 유형이 있다. 19세기 러시아에서 젊은 지식인들이 했던 활동도 포퓰리즘이었다. 그들은 농촌 공동체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 공유체제를 추구했다. 그렇다면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을 어떻게 솎아낼 것인가. 해답은 명백하다. 포퓰리즘이 일기 전에 정치가 먼저 가난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진실한 헌신을 보였는가를 살피면 된다. 평소에는 관심 없다가 포퓰리즘이 일자 뒤늦게야 '서민'을 외치는 이들은 인기영합적 포퓰리스트다.
정치의 존재 이유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가난을 물리치는 데 있다. 그 목적을 위해 때로는 적극적으로 포퓰리즘과 손잡을 수 있다. 그것을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내달리게 하는 것이 정치다. 진실한 헌신을 바탕으로 포퓰리즘과 손잡는 정치가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스트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에바 페론은 정치의 본질적 측면을 보여줬다.
아르헨티나는 오랜 기간 군부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무능한 독재자들의 전제적 통치는 숱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갈등을 빚어냈다. 오늘날 이조차 에바 페론 탓이라고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안타까움에 에비타의 주제곡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Argentina!)'를 듣게 된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당신들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 수많은 성악가와 가수들이 즐겨 불렀던 곡이다. 오늘은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노래를 들으면서 불신과 혼돈에 빠진 우리 정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진영 < 국회의원 ychin21@na.go.kr >
한때 아르헨티나를 좋아했다. 영화 '에비타'를 본 뒤 에바 페론을 좋아하게 됐다.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애칭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아르헨티나의 고통을 에바 페론의 선심행정,즉 지나친 복지정책 탓으로 여긴다. 나도 그런 면을 부분적으로는 인정한다. 그러나 에바 페론과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현실 사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에바는 '대통령 영부인 에바 페론'보다 '소외된 이웃의 친구 에비타'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말했다.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의 어머니로,가난한 노동자의 동료로,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가로 한 평생을 살았다. 에바에게는 이것이 '삶의 존재 이유'였다. 1952년 7월26일 33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뒤에도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슬픔과 함께 꺼지지 않는 신화가 됐다.
요즘 한국에서도 복지 논쟁이 일고 있다. '포퓰리즘'이란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이를 가리켜 '민중선동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포퓰리즘이 민중선동주의는 아니다. 포퓰리즘에도 유형이 있다. 19세기 러시아에서 젊은 지식인들이 했던 활동도 포퓰리즘이었다. 그들은 농촌 공동체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 공유체제를 추구했다. 그렇다면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을 어떻게 솎아낼 것인가. 해답은 명백하다. 포퓰리즘이 일기 전에 정치가 먼저 가난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진실한 헌신을 보였는가를 살피면 된다. 평소에는 관심 없다가 포퓰리즘이 일자 뒤늦게야 '서민'을 외치는 이들은 인기영합적 포퓰리스트다.
정치의 존재 이유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가난을 물리치는 데 있다. 그 목적을 위해 때로는 적극적으로 포퓰리즘과 손잡을 수 있다. 그것을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내달리게 하는 것이 정치다. 진실한 헌신을 바탕으로 포퓰리즘과 손잡는 정치가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스트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에바 페론은 정치의 본질적 측면을 보여줬다.
아르헨티나는 오랜 기간 군부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무능한 독재자들의 전제적 통치는 숱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갈등을 빚어냈다. 오늘날 이조차 에바 페론 탓이라고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안타까움에 에비타의 주제곡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Argentina!)'를 듣게 된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당신들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 수많은 성악가와 가수들이 즐겨 불렀던 곡이다. 오늘은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노래를 들으면서 불신과 혼돈에 빠진 우리 정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진영 < 국회의원 ychin21@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