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3개월 연속 동결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8일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연 3.25%로 동결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8월 평균 4.5%에 달해 (올해) 4% 억제는 매우 어려운 과제"라며 "물가전망치를 수정할 것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 총재가 물가 전망 수정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트릴레마(trilemma · 삼중고)'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가와 성장,가계부채가 서로 얽혀 어느 한쪽을 풀면 다른 쪽이 꼬이는 상황이란 것이다.

◆문제는 인플레 기대심리

물가 측면에서 한은은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리 인상을 늦추는 바람에 물가 급등을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3%(전년 동월 대비)로 치솟았다. 올 들어 8월까지 평균 상승률도 4.5%에 달했다. 목표치(4%)를 계속 넘고 있다. 석유류와 농산물을 뺀 근원물가도 10개월 만에 4.0%로 올랐다. 국제 원자재값 급등 같은 공급 측면 외에 서비스 물가 상승 등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이 크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이다. 지난달 가계조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4.2%로 2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허진욱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퍼지면 한 품목에서의 가격 상승이 다른 품목의 가격 상승으로 번지는 나선형 물가 급등이 나타난다"며 "그렇게 되면 물가를 잡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대외 여건 때문에…"

그럼에도 한은은 9월 기준금리를 제자리에 묶어뒀다. 8월과 마찬가지로 '대외여건 불안'이 주된 이유였다. 대외 악재 때문에 섣불리 금리를 올릴 수 없다는 논리다.

김 총재는 "(금리 정상화를 위해서는)대외 여건이 해결까지는 아니라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 돼야 한다"며 "그걸 모르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9일(한국시간)로 예정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기 부양책과 이달 말 열리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 회의,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 등 주요국의 해법을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외 불안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시장에선 금리 정상화는 힘들어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경기 회복을 위해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춘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이달은 물론 연말까지도 기준금리를 올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가계부채도 골치

최근 한은법 개정으로 '물가 안정' 외에 '금융 안정' 목적을 추가로 부여받은 한은으로선 가계부채도 고심거리다. 김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의 중요성을 매우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특정 소득계층은 가계부채가 과다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계부채를 금리 정책으로 푸는 데는 한은이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김 총재는 "금리는 무차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큰 정책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한은 역할론'과 온도차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