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는 경주마와 기수를 바닷물에 풍덩 빠뜨린다. 성깔 사나운 말이 좀처럼 기수를 태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육지를 향해 헤엄치지만 수영을 못하는 기수는 맥 없이 가라앉는다. 이때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말이 머리를 돌려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수 쪽으로 자맥질해 그를 등에 태우는 것이다. 경주마는 예전에 차 사고로 새끼를 잃고 절름발이가 됐고 어린 딸을 데리고 사는 기수도 시력을 잃고 있다. 바다에서 친구가 된 이들은 함께 경주로에 나선다.

7일 개봉한 이환경 감독의 영화 '챔프'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들을 포착했다. 사람과 교감하는 말의 생리를 뜨겁게,또 서늘하게 보여준다. 말을 소재로 한 영화 '각설탕'과 '그랑프리'보다 훨씬 감동적이다. 경주마가 막판에 다른 말들을 추월하는 '추입' 장면을 통해 '인생은 추입'이란 메시지도 전달한다. 절름발이지만 최고의 경주마로 은퇴한 루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흥행 코미디 '과속스캔들'의 차태현이 기수 역을 해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챔프'를 비롯한 한국 영화 4편이 극장가에서 각축한다. '푸른소금''통증''가문의 영광4-가문의 수난'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로 관객을 유혹한다. 4주 연속 흥행 1위를 차지한 '최종병기 활'도 관객몰이를 이어갈 태세다. 이들에 맞설 만한 외화는 찾기 어렵다. 여느 해보다 한국 영화가 강력하다.

권상우와 정려원이 주연한 '통증'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곽경택 감독의 멜로.어린 시절 사고로 가족을 잃은 후유증으로 맞아도 아프지 않은 남자는 자해공갈단처럼 철거민을 위협하며 산다. 선천성 난치병을 앓는 여자는 작은 상처에도 큰 통증을 느낀다. 그녀는 병구완에 재산을 다 쓰고 날품팔이로 살아간다.

두 남녀는 싸움으로 시작해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두 사람의 관계맺기를 유머로 이끌어가는 게 묘미다. 극중 정려원과 권상우가 상대의 실제 약점인 '말라깽이''혀짧은 소리'를 들춰내며 다투는 장면이 한 예다. 권상우는 "나,혀길어"라고 반발하고 정려원은 "나 말라깽이 아니야.살 많아"라고 항변한다.

'가문의 영광4-가문의 수난'에서는 조폭 출신 홍 회장 일가가 일본 여행길에 펼치는 소동을 담았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해외여행지에서 생기는 오해로 웃음을 주거나 기상천외한 상황으로 허리를 젖히게 만든다. 김수미 정준하 신현준 탁재훈 현영 정웅인 박철민 등 낯익은 스타들이 등장한다.

'푸른소금'은 스타일리스트 이현승 감독이 '시월애' 이후 11년 만에 내놓은 신작.평범하게 살고 싶은 조직 보스(송강호)와 그를 감시하는 임무를 띤 여자(신세경)가 서로의 신분을 감춘 채 조금씩 가까워진다. 현란한 영상과 음악이 화면을 채색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