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전답을 팔아 골동품을 구입하곤 하셨어요. 손바닥만한 사발 하나를 사와서 지인들과 함께 술상을 차려놓고 요리조리 보며 감탄을 연발하던 모습이 선해요. "(김환기 화백의 딸 금자 씨)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를 비롯해 김종학 장욱진 이우환 서세욱 송영방 등 근 · 현대 화가들이 소장한 조선시대 목가구 전시회에 관람객들이 모이고 있다. 서울 사간동 두가헌갤러리와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26일까지 이어지는 '화가가 애호하는 조선시대 목가구'전이다.

조상의 예술혼을 느끼며 경제적 풍요와 복을 기원하는 취지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김환기의 애장품 이층사방탁자,김종학의 19세기 문갑,송영방의 연상(硯床),이우환의 이층책장,장욱진의 재떨이,서세옥의 빗접 등 60여점이 나왔다.

전시장은 '사랑방' '안방' '주방' 등 세 개 섹션으로 나눠 다양한 목가구를 보여준다. '사랑방' 섹션에는 서안(書案) 경상(經床) 이층장(二層欌 · 사진) 등이 전시됐다. '안방'에서는 문갑(文匣) 머릿장(欌) 좌경(座鏡) 이층농(二層籠),'주방' 섹션에서는 이층사방찬탁자(二層四方饌卓子) 찻상(茶床) 해주반(海州盤) 등을 만날 수 있다.

김환기가 인사동에서 구입한 이층사방탁자는 한국적인 정서와 향토적 미감을 담아낸 목가구.그가 어깨에 짊어지고 부암동 산길을 오르내리며 운반했다고 한다.

'설악산 화가' 김종학 화백은 19세기 먹감나무로 제작한 문갑을 내놓았다. 맨 윗단에 서랍을 둘로 나누어 먹감나무 무늬를 아래와 다르게 배치해 변화를 준 게 색다르다. 예술원 회원 서세옥 화백은 조선시대 여인들이 화장도구를 넣어 두는 빗접을 출품했다. 대나무 겉대를 오려내고 선을 음각한 후 목재 면에 붙인 제작기법이 색다르다. 구름과 학,매화,오리,석류 등 동식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게 마치 실물을 보는 것 같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고 있는 이우환은 1m 크기의 18세기 이층책장을 내놓았다. 그는 "사방탁자나 책장 같은 조선 목기의 뛰어난 작품성이 놀랍다"고 했다. '동심의 화가' 장욱진의 소장품인 느티나무 원형 재떨이,한국화가 송영방의 연상(硯床 · 벼루집)도 단아하고 격조 높은 조상들의 손재주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목가구는 동양적 감성의 표상으로 화가들이 변함없이 사랑하는 소재인 동시에 작품의 서정성을 표현하는 조형언어"라며 "경제가 어려운 때인 만큼 관람객들이 전시 작품을 보고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02) 3210-21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