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고추와 고구마 등을 추수하기 위해 회사 직원들과 함께 경기도 시흥의 무의탁 노인 마을을 찾을 계획이다. 그곳에서 하는 봉사활동은 올해로 8년째 계속 이어오고 있지만 매번 가슴 벅찬 설렘을 안겨준다. 높고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아래에서 가을 고추잠자리가 손등까지 와 앉아 노는 풍경을 보며 봉사활동을 한다. 빨갛게 익은 고추와 줄기에서 달려나오는 잘생긴 고구마를 수확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몇몇 회사 직원들은 귀여운 자녀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한다. 필자가 그 아이들과 함께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흠뻑 젖은 옷깃을 여미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해맑은 얼굴을 마주보며 뿌듯한 행복을 느낀다. 바로 필자가 속해 있는 회사에서 해마다 봄,가을이면 볼 수 있는 친숙한 광경이다.

세상에는 부모가 자식을 버려 고생하는 어린아이들도 있지만,거꾸로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경우도 많다. '오갈 곳 없는 무의탁 노인들도 이렇게 많구나'하는 것을 그곳에서 매번 느낀다. 정부의 지원과 우리 사회의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불쌍한 노인들이다. 그 분들에겐 우리같이 작지만 꾸준히 도움을 주는 회사 혹은 단체가 유일한 버팀목인 셈이다.

함께 땀 흘리며 노력봉사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는 다양하다. 어느 직원은 여기서 노인들 목욕을 생전 처음 시켜드리며 많은 것을 느꼈단다. 정작 자신의 집에 계시는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한 번도 목욕시켜드린 적인 없음을 깨닫고 집에 가서 얼른 해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셨다고 한다. 다른 직원은 처음 해보는 농삿일을 통해 평소에 우리가 먹는 음식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서먹서먹했던 어린 아들과 땀 흘리며 봉사활동을 한 뒤 한층 더 가까워졌다고 말하는 직원도 많다. 모두 아름다운 추억담이다. 봉사를 마치고 함께 먹는 닭매운탕의 맛은 그 무엇보다 맛있다. 봉사하는 날 모두가 보람차고 행복해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는 정보기술(IT)과 패션이라는 이질적인 사업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사업구조의 특성상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집단을 어떻게 하면 하나로 뭉치게 해서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와 기업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한 기업의 이질적인 문화는 경영목표와 비전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회사의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뿌리 자체를 흔드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매우 어려운 숙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준 사건(?)이 바로 이 봉사활동이다. 봉사활동은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없을 듯한 숙제를 해결해준다.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보람차고 가슴속 뜨거운 감정을 솟아오르게 해준다. 그것이 바로 봉사의 참 가치일 것이다. 그 가치를 느끼는 필자의 마음은 이번 가을에도 어김없이 가을 잠자리가 되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노학영 < 코스닥협회장·리노스 대표이사 hyroh@kosdaqc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