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이 뿌린 '부실의 씨앗' 갈수록 커져, "유럽發 2차 금융위기 오나" 공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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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파산 3년
고개드는 '리먼 원죄론'
주요은행 한곳만 쓰러져도 도미노 파산 등 패닉 가능성
고개드는 '리먼 원죄론'
주요은행 한곳만 쓰러져도 도미노 파산 등 패닉 가능성
뉴욕 맨해튼 42번가와 6번 애비뉴에 위치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타워 내 메릴린치 트레이딩 룸.지난 12일(현지시간) 평소 같으면 왁자지껄했을 이곳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리자 한 트레이더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해고를 통보하는 전화다. 다른 트레이더들의 얼굴엔 안도와 미안함이 교차했다.
모건스탠리의 한 직원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3년이 지난 현재 월스트리트에선 2008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부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는 여전히 월스트리트를 옥죄고 있다. BoA는 아직도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부실 모기지증권을 보유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전 세계 금융시장은 아직 리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지난 3년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경기가 후퇴할 때마다 '리먼 원죄론'이 거론됐다.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른 유럽 재정위기나 미국 경제의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도 뿌리는 리먼에 두고 있다. "유럽은행 위기가 터지면 그 영향은 리먼보다 더 클 수 있다"는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의 경고처럼 리먼이 뿌린 위기의 씨앗은 위협적인 존재로 자라고 있다.
올초만 해도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낙관론이 우세했지만 최근 분위기가 급격히 나빠졌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확률이 50%까지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주요 7개국(G7) 경제전망 중간평가 보고서를 통해 올 4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기존 3.0%에서 0.4%로 크게 낮췄다. 일본과 프랑스,영국도 0~0.4% 성장하는 데 그쳐 사실상 '제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물경제가 침체 공포에 시달리는 가운데 금융시장에서는 유럽발 '2차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영국은행업협회(BBA)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 금융회사의 단기자금 거래금리인 리보금리 3개월물은 0.34289%로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 미국은행들은 유럽은행과 거래를 중단했다. 2008년 리먼 사태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리스 등 유럽 재정 불량국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맞을 경우 이들 국가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은행들이 줄도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유럽 주요 은행 중 한 곳이 쓰러져 리먼파산 때와 같은 금융패닉 상태가 촉발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설리 기자/뉴욕=유창재 특파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