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또 말 바꾼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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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성분 물질이 발견됐다 해도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이 발견되지 않으면 고엽제가 매립됐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
지난 9일 과천 정부청사 내 환경부 기자실에선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이 열렸다. 경북 칠곡 미군기지 캠프 캐럴 고엽제 매립 의혹과 관련,한 · 미 공동조사의 중간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조사 결과 기지 내부 지하수 관측정에서 고엽제 주성분이자 맹독성 물질인 2,4,5-T가 0.161㎍/ℓ가량 검출됐다. 지난 5월 고엽제 매립 의혹이 제기된 이후 고엽제 성분 검출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상하수도 업무를 담당하는 이 관계자는 "고엽제 드럼통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매립 의혹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2,4,5-T가 1970년대 당시엔 제초제에도 쓰였던 만큼 고엽제가 아닌 일반 제초제 성분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환경부는 지난달 초 기지 내 다른 관정에 대한 수질조사 결과 "2,4,5-T가 발견되지 않아 고엽제 매립 징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해명했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그 주장을 뒤집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공동조사단의 미군 측 대표 버치마이어 공병참모부장(대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캠프 캐럴에서 1981년 제초제 등의 화학물질을 미국 유타주로 옮겨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고엽제 매립의 진상규명은 불가능해진다. 환경부 관계자는 "그렇다면 도대체 조사를 하는 이유가 뭐냐"는 기자들의 지적에 "좀더 지켜보자"는 식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환경부는 원래 지난달 말로 예정됐던 중간조사 발표 날짜도 연기했다가 추석연휴 전날인 이날 발표했다. "고엽제 성분이 처음 검출됐다"는 발표를 연휴 직전에 해 일반의 관심을 사그라지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고엽제 매몰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난 5월 말 환경부는 신속한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이후 환경부는 말 바꾸기를 계속하면서 "고엽제 물질이 나왔어도 고엽제의 실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한 아이돌 가수의 이 주장과 환경부의 논리가 겹쳐보이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지난 9일 과천 정부청사 내 환경부 기자실에선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이 열렸다. 경북 칠곡 미군기지 캠프 캐럴 고엽제 매립 의혹과 관련,한 · 미 공동조사의 중간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조사 결과 기지 내부 지하수 관측정에서 고엽제 주성분이자 맹독성 물질인 2,4,5-T가 0.161㎍/ℓ가량 검출됐다. 지난 5월 고엽제 매립 의혹이 제기된 이후 고엽제 성분 검출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상하수도 업무를 담당하는 이 관계자는 "고엽제 드럼통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매립 의혹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2,4,5-T가 1970년대 당시엔 제초제에도 쓰였던 만큼 고엽제가 아닌 일반 제초제 성분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환경부는 지난달 초 기지 내 다른 관정에 대한 수질조사 결과 "2,4,5-T가 발견되지 않아 고엽제 매립 징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해명했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그 주장을 뒤집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공동조사단의 미군 측 대표 버치마이어 공병참모부장(대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캠프 캐럴에서 1981년 제초제 등의 화학물질을 미국 유타주로 옮겨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고엽제 매립의 진상규명은 불가능해진다. 환경부 관계자는 "그렇다면 도대체 조사를 하는 이유가 뭐냐"는 기자들의 지적에 "좀더 지켜보자"는 식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환경부는 원래 지난달 말로 예정됐던 중간조사 발표 날짜도 연기했다가 추석연휴 전날인 이날 발표했다. "고엽제 성분이 처음 검출됐다"는 발표를 연휴 직전에 해 일반의 관심을 사그라지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고엽제 매몰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난 5월 말 환경부는 신속한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이후 환경부는 말 바꾸기를 계속하면서 "고엽제 물질이 나왔어도 고엽제의 실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한 아이돌 가수의 이 주장과 환경부의 논리가 겹쳐보이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