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호야,넌 록이 뭐라고 생각하냐?" "록이요,하트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그렇다면 트로트는 마음이다. " 록 가수를 꿈꾸던 봉달호(차태현)가 트로트 가수로 변신,성공한다는 내용의 코미디영화 '복면달호'에서 트로트를 가르치는 기획사 장사장(임채무)과 주인공의 대화다.

영화 속 무명 트로트 가수의 현실은 눈물겹다. 음향과 조명은커녕 마이크조차 엉망인 초라한 지방 야외무대.여주인공(이소연)의공연 중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몇 안되던 관객마저 흩어진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끝까지 노래하는 그녀.얼굴은 눈물과 빗물 범벅이 된다.

장사장은 그래도 달호를 트로트 가수로 키우려 애쓴다. "트로트의 생명은 자세야! 시선은 45도가 딱 좋아! 엉덩이에 힘 꽉 주고,업! 왜? 바로 섹스 어필이야!" 영화는 트로트 가수인 걸 감추려 복면을 썼던 봉필(달호의 예명)이 복면을 벗는 걸로 끝난다. "트로트는 맛있는 음악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게 최고다"라는 말과 함께.

트로트(trot)는 4분의 4 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가요 장르다. 트로트란 영어로 '빠르게 걷다'라는 뜻.일본 엔카(演歌)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191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했던 댄스리듬 폭스트로트(fox trot)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부딪쳤으나,지금은 폭스트로트에 강약과 독특한 꺾기 창법을 더해 완성시킨,독자적인 우리 장르라는 게 정설이다.

MBC 추석 특집 '나는 트로트 가수다'가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특집엔 데뷔 45년째인 남진을 비롯해 김수희 · 태진아 · 설운도 · 문희옥 · 장윤정 · 박현빈 등 쟁쟁한 트로트 가수 7명이 출연, 각기 다른 장르의 곡을 소화했다.

'나는 가수다'가 댄스뮤직으로 도배됐던 가요계를 다양화했다면,나는 트로트 가수다'는 트로트 가수들의 폭넓은 음악성을 보여줌으로써 뽕짝이란 이름으로 폄하돼온 트로트 및 트로트 가수에 대한 고정관념에 일격을 가한 셈이다.

"가수는 첫째도 노래,둘째도 노래,셋째도 노래야!"'복면 달호'에서 달호의 라이벌 나태송이 트로트 황태자로 떠오른 봉필에게 던진 말로'나는 트로트 가수다' 출연자들이 입증한 대목이다. '나가수'시리즈의 인기는 성공의 바탕은 탄탄한 기본기와 끈기임을 전한다. 다양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망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