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 출신의 K변호사는 요즘 '그냥 판사할 걸 왜 그만뒀나'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재판에 들어갈 때마다 두세 번에 한 번꼴로 판사의 지적을 받는데 이게 영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새카만 후배판사일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 최근에는 사법연수원 기수로 10년 넘게 차이나는 후배 판사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하면서 "공부 좀 더 하셔야겠습니다"라고 비아냥거린 적도 있다. '공부 더해야 할 건 너다,이 핏덩이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전관'들도 애환을 토로한다. 전관들은 재임 시절 쌓은 연줄을 이용해 사건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돈을 긁어모으는 존재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막상 전관들 사이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관예우도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부른 소리'라는 법조계 일각의 반박도 만만찮다. 실상은 어떨까.

◆"전관에게 맡겨도 예우받을 확률 30%"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는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원 안에서 전관예우 문제는 그동안 많은 시정이 이뤄져 이제는 오히려 역차별을 걱정할 정도로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변호사 개업한 후에 1호로 맡은 사건이 바로 기각된 사례를 본 일이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전관들에게 역차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향력에 분명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예컨대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경우 로펌에서 1주일에 맡는 대법원 상고 사건이 30건은 족히 돼 웬만한 사건 아니면 염치상 법원에 일일이 전화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관에 사건을 맡긴 의뢰인들 가운데 30% 정도만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관예우는 제대로 통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는다. 모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의 말이다. "사무실에서 의뢰인이 공범이면 형을 낮출 수 있는데 주범으로 기소됐으니 영 힘들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 말을 듣고 검찰 출신 전관이 좀 움직이더니 바로 다음 기일에 검사가 주범에서 공범으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해 놀랐습니다. "

◆초짜 변호사가 "나 전관인데…"

전관들은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정보력만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에게 고용된 L변호사는 "다른 건 몰라도 구속만 면하게 해달라는 의뢰인들이 찾아오면 전관이 검찰에 전화를 걸어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안 할지를 확인한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확인하면 억대의 성공보수를 부르며 사건을 맡고 그렇지 않으면 사건 수임을 거절한다"고 털어놨다. 이러다보니 전관예우의 효과가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일반 변호사들이 전관을 가장하기도 한다. 개인 변호사 C씨는 "수도권 신도시에 있는 한 아파트의 허위 분양광고 사건을 다른 변호사가 담당하다 해임돼 맡게 된 적이 있다"며 "그 변호사는 자신을 재판을 맡은 법원의 판사 출신이라고 의뢰인들에게 소개했는데 나이만 많을 뿐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사실이 나중에 들통났다"고 전했다.

◆브로커 안 썼더니 3개월간 수임'제로'

전관이라고 해서 사건이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은 누가 전관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법원장 출신 K변호사는 올해 개업 후 3개월 동안 사건을 한 건도 수임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관들이 사건을 물어다 주는 브로커들을 애용하는 이유다. 브로커들은 보통 '영업 사무장'이라는 직함으로 뛴다. 일부 검찰 직원들과 검찰 전관 사무장의 '커넥션'이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소환된 피의자가 "변호사로는 누가 좋겠느냐"고 눈치를 살피면 직원 대부분은 "아무나 찾아가세요"라고 대응하지만 일부는 검찰 전관 사무실의 사무장 명함을 주거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는 식이다.

커미션은 수임료 가운데 사무장이 5~10%,이어준 직원이 20~25%를 가져간다고 전해졌다. 변호사법 위반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사무실을 개업할 때 이런 용도로 직원을 데리고 가려는 검찰 전관이 일부 있다"고 귀띔했다.

◆개업하려니 옆방 부장이 선수 쳐

전관의 '약발'은 다른 전관이 나오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경쟁자를 막기 위한 눈치전도 치열하다. 경기도의 한 지검에 있는 A부장검사는 "지난달 검찰 인사가 나기 전 난데없이 한 전관 선배가 찾아와 '요즘 변호사 시장이 어려우니 개업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며 "순수한 의도 같아 보이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개업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A부장검사는 "한 부장검사는 지난해 개업하려고 했는데 바로 옆방의 부장검사가 먼저 사표를 써서 못 그만두고 아직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전관예우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변호사법이 지난 5월17일부터 시행되면서 중도 퇴직을 고민하는 판 · 검사들의 선호지도 바뀌고 있다. 올해 초 개업한 판사 출신 C모 변호사는 "중도 퇴직을 고민 중인 판사들 사이에선 서울중앙지방법원보다 서울 외곽 소재 법원이 인기"라고 귀띔했다. 개정 변호사법은 최근 1년간 근무한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사건이 가장 많은 서울중앙지법에 있다 퇴직하면 이곳 사건을 못 맡기 때문이다.

임도원/이고운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