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프레스데이(언론 공개 행사)를 시작으로 개막한 제64회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컨셉트카 가운데 단연 돋보인 것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수소연료전지차인 'F 125'였다. 디터 체체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은 이날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갈매기 날개(gull wings) 모양의 도어가 달린 럭셔리 쿠페를 가리키며 "두 날개로 4명을 태우고 1000㎞를 달리면서도 탄소배출량은 제로"라고 소개했다.

벤츠가 창립 125주년을 맞아 선보인 미래형 수소연료전지 컨셉트카를 디자인한 주인공은 한국인 이일환 씨(38 · 미국명 휴버트 리 · 사진).그는 지난해 4월부터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국 디자인센터 본부장을 맡고 있다.

벤츠 전시관에서 만난 이 본부장은 "F 125는 벤츠의 미래 디자인과 기술을 보여주는 컨셉트카이지만 모든 기능이 완벽히 작동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점토 작업으로 디자인을 완성해 이사회 멤버들의 승인을 받는 데까지 2개월이 걸렸다"며 "디자인 작업을 다소 서두른 측면이 있지만 벤츠의 미래 기술을 보여주는 결정판"이라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종이에 자동차 그리는 걸 좋아했던 이 본부장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미국 동부지역 로드아일랜드 미대를 다녔고 그 후 자동차 디자인 최고 명문인 패서디나 아트센터(ACCD)로 옮겨 자동차 디자인 공부를 마쳤다.

그는 "벤츠 캘리포니아 디자인 본부에 2002년 입사했다"며 "당시 도요타 · 닛산 · 마쓰다 등 여러 회사와 인터뷰했는데 벤츠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한국에서 중 · 고등학교를 다닌 덕분에 한국어 영어 모두 유창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들어왔는데 책을 제대로 읽을 줄 몰랐다"며 "그때부터 눈물이 나도록 한국어를 다시 배웠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벤츠 디자인 분야에서 사실상 '2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벤츠의 디자인 총괄인 고든 바그너 수석 디자이너가 그가 지금 맡은 미국 디자인 본부장에서 승진했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입사 초기부터 잘나간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초기 4~5년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E클래스와 E클래스 쿠페 등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번번이 물을 먹었다"고 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4도어 쿠페 CLS클래스의 2세대 모델 디자인 공모에 참가했고 2007년 초 독일 본사에서 그의 작품을 최종 선택하면서 숨은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가 디자인한 '더 뉴CLS'는 이달 초 한국에서도 출시됐다.

이 본부장은 "외환위기로 아버지 사업이 휘청거릴 때 학업을 접고 한국에 들어가야만 했다"며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도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것이 오늘의 제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