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의 큰 별이 또 떨어졌다.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었던 '무쇠팔'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14일 오전 2시 경기 고양 일산병원에서 팬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향년 53세.

그는 '영원한 3할 타자' 장효조가 별세한 지 1주일 만에, 그리고 프로야구 600만 관중 시대가 열린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 한때 병세가 호전돼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지난해부터 병세가 나빠져 경기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왔다.

지난 7월에는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간의 '레전드 매치'에 경남고 유니폼을 입고 참가했으나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더그아웃만 지켜 야구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는 당시 "살이 너무 쪄 식이요법으로 감량했는데 체중을 너무 뺐다. 지금 살을 다시 불려가는 과정이다. 다부지게 준비해 다음에는 꼭 던지겠다"고 말했다. 이 말이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됐다.

경남고와 연세대를 거쳐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최동원은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함께 '한국야구 100년사'에서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다.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작성해 두각을 드러낸 그는 이듬해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솎아내 초고교급 투수 반열에 올랐다.

현역 시절 최고시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자랑했던 그는 타자를 압도하는 승부 근성과 눈부신 연투 능력으로 '무쇠팔'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3년 프로에 진출한 뒤 1984년 27승13패 6세이브라는 성적을 거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다섯 경기에 등판해 혼자 4승(1패)을 따내는 기록을 세우며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이듬해에도 20승을 올리며 롯데 에이스로 활약하던 그는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하다 실패하고 삼성으로 둥지를 옮겼다. 1990년 시즌이 끝난 뒤 통산 103승74패 26세이브 평균 자책점 2.46의 화려한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 씨와 군 복무 중인 아들 기호 씨가 있다. 빈소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6일 오전 6시.02-2227-7587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