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중·일 공동換결제기구 설립해야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세계경제가 더블딥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 바람에 한 · 중 · 일 3국은 사상 최대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놓고도 서구 경제와 같이 환율 및 주가 불안을 겪고 있다. 더욱이 서구 경제 침체로 시간이 갈수록 수출이 어려워져 수출의존도가 높은 동북아 3국 경제운영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 걱정된다. 따라서 동북아 3국이 서구 재정 · 금융위기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역내 수입시장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큰 걸림돌이 있다. 한 · 중 · 일 3국간 무역대금 결제시스템이 미 달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대부분 무역이 달러표시로 이뤄지고 있으며 원,위안,엔 표시로 이뤄지는 경우에도 은행 간 결제과정에서 달러가 중간에 개입된다. 가령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면 한 · 중 은행 간에 원화와 위안화 결제가 직접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원 · 달러,달러 · 위안화 결제의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무역대금 결제는 은행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이같이 달러가 결제에 개입되면 은행은 결제에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달러를 조달해야 하며,달러 환율변동 위험에 노출된다. 따라서 동북아 3국 경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국제유동성 위기나 달러 불안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동북아 은행들에는 달러 조달비용과 환리스크 관리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또한 은행들은 불필요한 달러를 과다 보유할 수밖에 없다. 이들 비용은 전부 기업에 전가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 · 중 무역에서만 연간 1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달러결제 시스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3국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환결제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이 기구가 설립되면 한 · 중 · 일 중앙은행은 이 기구의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대규모 통화스와프로 원,엔,위안을 확보해서 예치하도록 한다. 각자 외화를 확보해서 예치하는 것이므로 보유액 증대 효과도 있다. 일반은행들은 결제회원으로 가입하도록 해서 이 기구를 상대로 국내 통화로 결제토록 하면 달러 보유나 달러환율 위험관리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다.

한 · 중 · 일 3국 간 환율도 이 기구가 보유하는 원 · 위안 · 엔 자금 잔액에 연동시키면 외환시장 투기를 차단하면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현재 3국 환율비율이 '1엔=2위안=13원'이라고 한다면 3국 중앙은행이 이 비율에 맞춰 통화스와프를 해서 자금을 예치한다. 이후 한국의 대일 수입이 늘어나면 한국 시중은행이 원화를 결제기구에 지급하므로 결제기구가 보유하는 원화는 증가하는 반면에 결제기구는 일본 시중은행에 엔을 지급하므로 결제기구가 보유하는 엔화는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이 추가로 통화스와프를 해서 엔화를 결제기구에 더 예치하든지 아니면 엔 · 원 환율상승을 방치해서 수입수요가 자동 조절되도록 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한도제를 도입해 은행의 수입자금 결제를 원천적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이것이 과도하면 역내수입 활성화 취지 자체가 약화될 수 있으므로 3국 정부 간 자율협정이 필요할 것이다. 제도 추진 경과를 봐서 무역대금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정 가능한 서비스 계약이나 장기투자 거래 등으로 결제 대상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제기구는 보유하고 있는 3국 통화 잔액변화를 반영해 일정 시간마다 환율을 고시하면 이것은 외환시장에서 펀더멘털만 반영하는 환율로서 투기세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신뢰도 높은 가격지표 역할을 할 것이다. 은행으로서도 외화유동성 위험이나 환리스크가 거의 없으므로 기업의 결제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3국 정부로서도 대외유동성 확보 필요성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달러에 치중된 외환보유액 구성을 다변화할 수 있다. 또 유로화처럼 단일 결제통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국의 통화정책 독립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강철준 <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