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이후 처음 열린 국내 증시가 맥없이 무너졌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63.77포인트(3.52%) 급락한 1749.16에 마감했다. 1800선은 물론 1750선마저 지키지 못했다.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들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남아 있다. 대외 충격에 대한 국내 시장의 내성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때보다 강해져 심각한 충격은 피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늪속의 괴물'이 온다

이날 코스피지수를 끌어내린 것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10일(1조2759억원) 이후 최대인 687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그리스의 3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지난 6월 연 20%대에서 전날 172%까지 치솟았다. 매수 · 매도 호가 차이는 47%포인트까지 벌어져 거래가 거의 실종됐다. 국채 부도에 대한 보험료를 뜻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40.0%포인트 수준으로 8월 초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독일과 프랑스 주요 은행들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2분기 '1차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의 2배 수준으로 커졌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유럽이 원만한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어떤 낙관적 신호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파급 효과를 알 수 없는 '늪 속의 괴물(그리스의 부도)'이 출현하는 일은 이제 시간 문제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국내 파급 효과 전망 엇갈려

그리스 디폴트로 인한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국내 경제 체력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보다 낫다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디폴트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유럽 일부 은행의 파산과 CDS 판매 금융회사들의 부도,미국 머니마켓펀드(MMF) 시장 경색이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충격이 훨씬 덜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고유선 대우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유럽 각국과 유럽중앙은행(ECB)은 과거보다 은행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이 외에도 신용 경색을 막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돼 2008년과 같은 극단적인 유동성 경색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단기적으로는 보수적 대응 필요

전문가들은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ECB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앞으로 취할 조치에 따라 단기 반등은 가능하겠지만,지수 흐름이 위로 가기는 힘들어 보인다"며 "주식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 수석연구위원도 "당장은 관망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며 "주가가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단기적 관점에서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는 대응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부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저가 매수에 나서는 전략도 괜찮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은택 동부증권 연구원은 "그리스와 관련한 루머에 흔들리지 말고,지수가 전 저점인 1700대까지 하락하면 주식을 매집한 뒤 기다리는 투자전략도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태호/서정환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