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가 모바일 겸용 윈도8을 발표하는 날,한때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윈텔(윈도+인텔)' 동맹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끈끈한 관계였던 인텔은 구글과의 협력이라는 카드를 꺼내놓았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오랜 친구 대신 모바일용 운영체제(OS)의 신흥 강자와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텔은 1999년 휴대폰 통신용 반도체 전문업체 DSP커뮤니케이션을 인수하는 등 여러 차례 모바일 시장 진출을 타진했지만 번번이 쓴맛을 보고 물러서야 했다. 고성능 PC에 맞춰 발전한 인텔 CPU(중앙처리장치) 기술의 한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제 전력 소모가 적은 신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데다 구글이라는 지원군까지 만났기 때문이다.

◆인텔 "ARM 나와라"

폴 오텔리니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1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인텔 개발자 회의 2011' 첫날 연설을 통해 구글과의 협력을 전격 발표했다. 오텔리니는 "고객들이 인텔 구조 기반의 스마트폰 생태계를 선택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도 참석해 메드필드 CPU 기반의 새로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인텔과 구글의 연합으로 영국 ARM사 설계를 기반으로 한 제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모바일 CPU 시장에 파란이 일 전망이다. 현재 삼성 퀄컴 엔비디아 등이 제작 · 생산하는 모바일 CPU는 ARM의 설계를 라이선스 방식으로 취득한 뒤 이를 변형한 것들이다. 자체적으로 CPU 설계에 나서는 것보다 충분히 검증된 설계를 이용하는 게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메드필드는 현재 저가형 노트북PC인 넷북에 쓰이는 '아톰' CPU를 발전시킨 것이다. PC 업체들이 널리 활용해온 CPU이기 때문에 빠르게 모바일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루빈,왜 마음 바꿨나

인텔과 구글이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협력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9년 말 인텔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오텔리니는 성장세에 접어든 모바일 시장에 관심을 갖고 구글에 협력 의사를 타진했다. 당시 에릭 슈미트 구글 CEO는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성사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루빈 부사장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루빈은 ARM이 모바일용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텔제 CPU에 맞춰 안드로이드 OS를 조정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루빈은 2005년 구글에 합류할 때부터 안드로이드 OS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가 애플에서 퇴사한 뒤 설립한 안드로이드라는 회사에서 직접 개발한 OS였기 때문이다. 슈미트 CEO조차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2010년 구글과 인텔이 손잡고 내놓은 구글 TV는 안드로이드 기반이었지만 루빈이 관장하는 모바일 분야가 아니었기에 협력이 가능했다는 관측이다.

그랬던 루빈이 직접 협력을 선언한 것은 그만큼 모바일 시장의 경쟁이 격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애플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모바일 시장에 진입하는 상황이어서 협력 업체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여 안드로이드 OS 탑재 기기의 종류와 숫자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평했다.

샌프란시스코=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