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국제학연구소 선임 연구위원)가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을 통해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한 건 베를린장벽 붕괴 3년 후인 1992년이었다. 이후 20년이 흘렀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후쿠야마는 여전히 자유 민주주의가 가장 진화된 정치 체제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미국식 자유주의를 믿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너무 많이 나갔다"고 주장한다. 후쿠야마는 "어떤 면에서는 중국이 미국보다 더 효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계의 힘의 균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국제정치 분야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후쿠야마의 인재포럼 강연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후쿠야마는 11월2일 기조세션Ⅰ(혼돈의 세계경제:위기를 넘어 기회로)과 특별세션Ⅲ(아시아 세기의 미래 인재)에서 주제발표를 한다.

◆우연히 선택된 민주주의의 승리

후쿠야마는 지난 4월 '정치 질서의 기원(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이라는 새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서구 중심적 사관에서 탈피했다. 민주주의는 역사 발전의 필연적 귀결이 아니라 우연하게 선택된 정치 체제라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역사상 최초의 국가를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중국의 진나라로 봤다. 유럽에서는 진나라보다 1000년 후에 부족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 유럽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꽃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느린 역사 발전 때문이었다. 부족제도가 봉건제도로 바뀌면서 영주와 권력을 나눠가져야 했던 왕이 중국 황제와 같은 절대 권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미국식 민주주의 정답 아니다

후쿠야마는 지난 1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로는 중국을 가르칠 수 없다(Democracy in america has less than ever to teach china)"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국인들이 '미국보다 중국이 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로 분류되는 중국식 통치체제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신속한 결정을 내리며,이는 경제 분야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로 이어져왔다.

물론 후쿠야마는 중국 통치체제의 지속 가능성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경제상황이 악화되거나 지금보다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가 정권을 잡는다면 체제가 언제든지 도전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후쿠야마는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미국으로부터는 중국이 별로 배울 게 없다고 말한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너무 분열되고 극단화(polarised)돼 있어 통치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주장은 지난 7월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놓고 벌인 공화당과 민주당 간 '치킨게임'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경제 발전 초석은 신뢰

후쿠야마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개념 중 하나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그는 '역사의 종언'을 출간한 3년 후인 1995년 또 하나의 대표작 '트러스트(TRUST-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를 내놓는다. 후쿠야마는 이 책에서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타인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고신뢰'의 사회가 돼야 사람들은 활발한 경제행위를 할 수 있고,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종교나 전통,역사적 관습과 같은 문화적인 특성을 통해 사회적 자본이 창조되고 전수된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를 통해 강조하는 사회적 자본의로서의 신뢰는 개인적 연고를 초월한 '공적인 신뢰'라는 점에서 학연 · 지연 · 혈연이 중시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가 배출되기 위해서도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토양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후쿠야마는 강조한다.

▶후쿠야마 교수는…脫 냉전기 국제질서 새패러다임 제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52년 시카고에서 일본계 미국인 3세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1905년 러일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후쿠야마는 뉴욕 맨해튼에서 일본 문화와 거의 접촉하지 않고 철저한 미국인으로 자랐다. 일본어도 배우지 않았다.

코넬대에서 서양고전을 전공하며 정치 철학을 처음 접했다. 이후 예일대에서 비교문학 석사 과정을 밟다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의 유명 평론가 롤랑 바르뜨,철학자 자크 데리다 등에게 비교문학을 배웠다. 하지만 6개월만에 비교문학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꿔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에서는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과 함께 수학하기도 했다.

하버드 졸업 후 1979년부터 1996년까지 랜드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조지메이슨대에서 공공정책,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경제 교수를 지냈다. 작년부터 스탠퍼드대 국제학연구소에서 선임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치학자이자 역사철학자인 후쿠야마는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한 1989년 논문 ‘역사의 종언’을 발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이 논문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공산권이 몰락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선언, 탈냉전기의 새로운 국제질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후쿠야마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레이건 독트린 수립에 기여한 신보수주의(네오콘)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네오콘과 거리를 두기 시작해 2003년부터는 이라크전쟁에 반대의목소리를 높였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