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국내 여자프로골프의 13개 대회 우승자는 모두 달랐다. 절대 강자가 사라지면서 골고루 우승을 나눠갖는 분위기다. 대회마다 새로운 스타 탄생이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탄생하는 반면 스타 부재로 팬들의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국내 여자프로골프를 진단한다.

◆17년 만에 다승자 없는 시즌 될까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시즌 대회 숫자가 20개를 넘기며 투어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당시 신지애가 시즌 대회의 절반에 육박하는 9승을 거두며 사실상 투어를 독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안선주(3승)와 지은희(2승)가 다승 대열에 동참했다.

신지애가 7승을 올린 2008시즌에도 서희경이 6승,김하늘이 3승을 획득했다. 2009년에는 서희경이 5승,유소연 4승,이정은이 2승을 했고 지난 시즌에는 이보미가 3승,안신애와 양수진이 각각 2승을 거둬 해마다 2승 이상자가 3명 이상 나왔다.

1994년에는 한 시즌에 2승 이상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당시 9개 대회를 치렀으나 모두 우승자가 달랐다.

앞으로 남은 대회는 오는 22일 개막하는 제33회 메트라이프 · 한국경제KLPGA챔피언십을 비롯해 8개다. 현재 상금랭킹 1위 심현화가 획득한 상금액수는 2억6129만원이다. 5년 만에 5억원 이하로 상금랭킹 1위가 탄생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장타 · 쇼트게임 겸비해야 가능

다승자가 되려면 장타와 퍼팅 등 쇼트게임 등을 모두 갖춰야 한다. 아니카 소렌스탐,로레나 오초아,청야니 등이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은 두 가지를 겸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선수는 드물다. 장타자는 쇼트게임 능력이 떨어지고 퍼팅을 잘하는 선수는 단타자의 한계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올 시즌 우승을 거둔 선수 중에도 롱게임과 쇼트게임에 모두 능한 사람은 없다. 이정은 김하늘 양수진 정연주 심현화 등은 장타자로 분류되는 대신 퍼팅이나 어프로치샷 등 쇼트게임에서 약점을 보인다. 장타 랭킹 5위인 김하늘은 "경기를 하다보면 반드시 넣어야 다음 게임이 잘 풀리는 퍼팅이 있는데 이런 게 잘 안된다. 퍼팅만 된다면 몇 승이고 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장타 랭킹 1,2위를 다투는 이정은은 "퍼팅이 약점이다. 샷에는 문제가 없는데 '설거지(그린 주변 플레이)'가 안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장타 랭킹 6위 정연주는 "퍼팅은 잘하지만 100야드 이내 쇼트 어프로치샷이 핀 주변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반면 이승현 김혜윤 등은 단타자인 대신 '퍼팅 귀신'으로 불릴 정도로 탁월한 쇼트게임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평균 드라이버샷이 220~230야드인 이승현과 김혜윤은 빼어난 퍼팅 감각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언더파를 치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김하늘은 이들과 동반 라운드를 하다보면 퍼팅실력에 기가 질려 플레이를 못할 정도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원대한 목표와 독기가 없다

시즌 2승자가 나오지 않는 배경에는 선수들의 오기와 집념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에 우승하지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원형중 SBS골프채널 해설위원은 "소렌스탐은 세계 최고의 선수를 넘어 18홀 54타를 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다. 그런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골프역사에 길이 남는 선수가 됐다. 골프를 즐기면서 치면 '롱런'하는 선수는 될 수 있지만 넘버원이 되기 위해서는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