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뜬 달항아리…"뽀얀 질감 재현에 20년 바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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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강민수 씨 21일 작품전
18세기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둥실하고 풍만하다. 여인의 뽀얀 살결 같다. 20여년간 전통 백자 달항아리를 재현해온 도예가 강민수 씨(40 · 사진)가 오는 2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작품전을 펼친다. 단국대 도예과 출신인 강씨는 1998년 국제 공예공모전을 비롯해 사발 공모전,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잇달아 입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두 개의 반구(半球) 모양을 이어붙여 높이 60㎝ 안팎의 달항아리를 만들고 매끄러운 질감을 다듬어내는 데 거의 20년을 바쳤다.
경기도 광주의 가마터에서 만난 그는 "김환기 화백이 '나의 모든 예술은 조선 백자와 백자항아리에서 나왔다'고 했고,굽이 좁고 입구가 넓은 달항아리를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고 격찬하면서 즐겨 그림 소재로 삼았다"며 "시를 쓰는 마음으로 조상의 멋과 슬기를 되살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가마에서 아래 위 이음매가 터지거나 두께가 맞지 않아 주저앉기를 수백 번 했습니다. 참나무 등걸에 앉아 있는 새 소리, 바람 소리까지 그릇에 녹여냈지요. "
풍경들이 뿜어내는 순수 언어의 결정체가 그릇을 이룬다는 얘기다. 그는 "불 뼈다귀와 흙의 맥을 시인의 마음으로 깨쳐 나간다"며 "시인과 도예가는 방편이 다를 뿐 보는 눈과 생각,호흡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얘기했다.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말을 더듬는 그가 올해까지 완성한 작품은 겨우 150여개.그 정도로 엄격하고 까다롭다. "마음에 들지 않아 깨부순 도자기만 수만 개에 달합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서 감을 얻었지만 어떻게 비법을 찾게 됐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
그의 달항아리들은 조선 달항아리(48㎝)보다 약간 높은 52~57㎝지만,어떤 것은 풍만하고 어떤 것은 홀쭉하다. 흙과 사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다양한 대칭형의 달항아리가 우아하고 아름답다.
"달항아리는 큰 사발 형태 두 개를 만들어 제작합니다. 위와 아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도 어렵거니와 잘 접합했다 하더라도 한쪽으로 기울거나 뒤틀리는 일이 많거든요. "
그는 여전히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한다. "노변(爐變 · 불의 조화)의 스릴을 즐기는 장점이 있거든요. 전통과 현대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 같아요. 어딘가 닮았지만 아버지와 다른 무엇이 아들에겐 있죠.그러기에 전통 추종이나 전통 단절 모두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
그는 조선의 달항아리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전국을 돌며 흙을 가져다 실험하고 있다. 백자 달항아리의 형태나 유약의 비법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흙을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전남 강진 · 무안을 비롯해 강원도 양구,제 작업장과 가까운 경기도 광주 등에서 가져온 흙으로 달항아리를 빚고 쌍 굴뚝을 가진 세 칸짜리 가마에 넣어 불을 지피는 일이 제 작업이고 삶이지요. "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3년 동안 제작한 달항아리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그는 두 개의 반구(半球) 모양을 이어붙여 높이 60㎝ 안팎의 달항아리를 만들고 매끄러운 질감을 다듬어내는 데 거의 20년을 바쳤다.
경기도 광주의 가마터에서 만난 그는 "김환기 화백이 '나의 모든 예술은 조선 백자와 백자항아리에서 나왔다'고 했고,굽이 좁고 입구가 넓은 달항아리를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고 격찬하면서 즐겨 그림 소재로 삼았다"며 "시를 쓰는 마음으로 조상의 멋과 슬기를 되살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가마에서 아래 위 이음매가 터지거나 두께가 맞지 않아 주저앉기를 수백 번 했습니다. 참나무 등걸에 앉아 있는 새 소리, 바람 소리까지 그릇에 녹여냈지요. "
풍경들이 뿜어내는 순수 언어의 결정체가 그릇을 이룬다는 얘기다. 그는 "불 뼈다귀와 흙의 맥을 시인의 마음으로 깨쳐 나간다"며 "시인과 도예가는 방편이 다를 뿐 보는 눈과 생각,호흡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얘기했다.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말을 더듬는 그가 올해까지 완성한 작품은 겨우 150여개.그 정도로 엄격하고 까다롭다. "마음에 들지 않아 깨부순 도자기만 수만 개에 달합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서 감을 얻었지만 어떻게 비법을 찾게 됐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
그의 달항아리들은 조선 달항아리(48㎝)보다 약간 높은 52~57㎝지만,어떤 것은 풍만하고 어떤 것은 홀쭉하다. 흙과 사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다양한 대칭형의 달항아리가 우아하고 아름답다.
"달항아리는 큰 사발 형태 두 개를 만들어 제작합니다. 위와 아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도 어렵거니와 잘 접합했다 하더라도 한쪽으로 기울거나 뒤틀리는 일이 많거든요. "
그는 여전히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한다. "노변(爐變 · 불의 조화)의 스릴을 즐기는 장점이 있거든요. 전통과 현대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 같아요. 어딘가 닮았지만 아버지와 다른 무엇이 아들에겐 있죠.그러기에 전통 추종이나 전통 단절 모두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
그는 조선의 달항아리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전국을 돌며 흙을 가져다 실험하고 있다. 백자 달항아리의 형태나 유약의 비법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흙을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전남 강진 · 무안을 비롯해 강원도 양구,제 작업장과 가까운 경기도 광주 등에서 가져온 흙으로 달항아리를 빚고 쌍 굴뚝을 가진 세 칸짜리 가마에 넣어 불을 지피는 일이 제 작업이고 삶이지요. "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3년 동안 제작한 달항아리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