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소가 예비전력 '거짓말'…전국 '블랙아웃' 직전까지 갔다
정전 대란이 발생한 15일 오후 당시 실제로 동원할 수 있었던 전력 발전량이 정부의 당초 발표치에 휠씬 못미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력수급 관리를 담당하는 전력거래소는 전국에서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발전기 상태가 어떤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한전과 한전 산하 6개 발전회사 역시 전력거래소의 결정에 따라 전국 지역사업본부에서 그대로 단전을 시행했다. 전력거래소로부터 잘못된 전력예비율 정보를 받은 지식경제부는 순환 정전이 비상 매뉴얼에 따라 적절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긴급한 상황이었다"는 모호한 설명만 내놓았을 정도로 허둥댔다.

지경부가 18일 발표한 1차 사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5일 당시 전력 공급능력은 당초 발표한 7071만㎾가 아닌 6752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발표치와 실제 전력공급 능력이 무려 319만㎾나 차이가 벌어졌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이에 대해 "전력거래소가 지경부에 제공한 전력공급 능력에 허수 계산이 있었다"며 "최소 5시간의 예열이 필요한 비상대기 발전기를 모두 동원할 수 있는 전력으로 계산한 게 잘못이었다"고 설명했다.

사태 발생 당일인 15일로 거슬러가면 전력거래소는 오전 11시 최대 전력수요가 6728만㎾를 기록하며 예측치(6400만㎾)를 넘어서자 지경부에 전력수급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보고를 했다. 오후 2시30분 예비력이 안정선인 400만㎾ 이하로 떨어지자 전력거래소는 지경부에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시그널을 보냈지만,지경부 전력산업과는 단전조치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회신을 보냈다.

지경부는 이와 관련,"당시 2시30분에 예비력이 350만㎾로 정전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 예비력에는 허수계산이 포함돼 실제 예비력은 80만㎾대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오후 3시 전력피크를 기록하고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전력거래소는 순환정전 결정을 내리게 됐다. 순환 정전을 내릴 당시 실제 예비력은 24만㎾로 전국 동시에 전기가 모두 끊기는 '블랙 아웃'직전이었던 셈이다. 만약 전국의 전력소비가 갑자기 급증했을 경우 전국 전력계통선이 과부하로 피해를 입고 장기간 정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한전 및 발전자회사의 무리한 발전기 계획정비도 새로운 논란이 되고 있다. 지경부는 전력수급 비상대책기간을 '9월9일까지'에서 '23일까지'로 2주 연기하기로 하고 공문을 내려보냈지만 발전 자회사는 이를 무시하고 25개 발전기 정비에 나섰다가 전력공급 부족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정전 피해 축소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지경부는 당초 정전 피해 가구수가 212만가구라고 발표했지만,이는 최대 단전 시점의 피해 가구수다. 총 누적 정전가구수는 3배가 넘는 656만가구로 최종 집계됐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전력거래소와 한전의 안이한 수요관리,정부의 부실 대응 등이 불러온 인재"라며 "지경부 한전 전력거래소 모두 국민에게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