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실 필자만의 비법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의 특징과 성향을 이름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워커힐호텔에 있을 때 2000명 넘는 구성원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한 것도 바로 '이야기 효과' 덕이다. 인지심리학자인 로저 생크와 로버트 아벨슨은 인간의 뇌에 이야기를 저장하는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고 했다. 그래서 얘기를 덧붙이면 기억을 쉽게 하고 더 오래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듣는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스토리는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그 여운을 오래 남긴다. 또 그 스토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전파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그들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키는 것을 '스토리텔링'이라고 한다. 지금도 고등학교 동문끼리 모이면 오래전 참석했던 동문회 얘기가 회자된다.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당시 우리 학교의 교복과 교모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메뉴판에는 교훈과 교가가 적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코스 메뉴를 수업시간표처럼 꾸며 놓기도 했다. 특히 4교시(넷째 코스)에는 추억의 양은 도시락까지 나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교훈과 교화를 묻는 퀴즈도 진행했다. 반응은 뜨거웠고 마치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처럼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음식도 더 맛있게 먹었다.

스토리가 있는 상품과 서비스는 그 자체로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전파시키는 또 다른 얘깃거리를 만든다. 스토리가 스토리화(化)되는 것이다. 고객은 결국엔 스토리를 구매한다. 감성을 자극해서 행복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객은 비용을 더 지불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단지 비싼 물건을 샀다고 과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명품에는 장인의 역사와 사용하는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기꺼이 지갑에서 지폐를 두툼하게 꺼내는 것이다.

호텔도 단순히 먹고 자는 서비스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재미와 감동의 얘기를 들려 줘야 한다. 필자가 워커힐호텔에 있던 시절 "맛 · 멋 · 서비스는 기본이고 스토리텔링까지 하라"고 구성원들에게 주문한 것도 이런 연유다.

억지로 스토리를 꾸미는 것은 오히려 스토리가 없는 것보다 못하다. 요즘처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고객은 똑똑하기 때문에 진실을 바탕으로 진심으로 만들어진 스토리만이 고객에게 통한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벌써 1999년에 《드림 소사이어티》를 통해 "이야기가 없는 상품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상품과 서비스에 스토리를 담는 노력과 역량을 동시에 개발해야 할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회의를 한다고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영화,미술을 관람하거나 콘서트를 같이 보면서 무한 상상력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유용종 < SK 부회장단 사장 yongjong@s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