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럽위기 장기화 '비상계획' 세워야
유럽위기의 본질은 빚지고는 못산다는 한국 속담 그대로다. 채무자는 물론 채권자도 빌려준 돈을 못받게 돼 어려워지고 세계화로 서로 연결돼 있는 오늘날에는 세계경제 전반에 충격을 주게 된다. 그런데 개인 부채는 빚을 진 개인이 갚아야 하므로 가능한 한 빚을 적게 쓰게 된다. 그러나 국가 부채는 쓰는 사람과 갚는 사람이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 부채 원인이 사회간접자본 등인 경우에는 많은 국민이 혜택을 보지만 복지지출인 경우에는 저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한편 국가 부채는 납세자 세금으로 갚는다. 한국 소득세의 경우 상위 20%가 세수 84%를 부담하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 세금이 상위소득계층에 집중돼 있다.

그 결과 대다수 국민들은 직접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게 돼 공공재 수요는 거의 무한정에 가까워진다. 결국 상위소득계층 부담만으로는 늘어나는 공공재 수요를 따라갈 수 없어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로 귀결된다. 국가부채가 과도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관리하는 정부나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데 오히려 정치적인 이유로 더 많은 지출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국가부채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차와 같이 언젠가는 한계에 이르고 파국을 맞게 된다.

오늘날 유럽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선 상황이다. 대체로 국민소득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80~100%를 넘어서면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부채비율 100%,지급이자율 5%인 경우에는 명목소득이 5% 증가해야 세수가 5% 증가해 이자를 갚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올해 국가부채비율은 152%와 120%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명목소득이 적어도 7.5%와 6%는 늘어야 재정적자 증가 없이 국채이자를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올해 성장률은 -3%와 제로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국채이자 지급과 세수 감소분만 해도 벌써 재정적자가 10.5%와 6% 증가하게 된다. 그런데 국민소득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이미 -10%와 -5%다. 따라서 저성장으로 지급이자증가율이 세수증가율을 상회해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이는 다시 성장을 제약하는 부채의 덫에 빠진 형국이다. 한번 부채의 덫에 빠지면 재정정책을 쓸 수 없어 경제는 장기 침체국면에 진입하게 된다.

또한 남유럽국가들은 저축률이 낮아서 국채의 절반 정도를 프랑스 독일 등 북유럽 금융회사들에 팔았다. 이제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 신규 발행은커녕 차환도 어렵다. 결국 채권기관들의 채무재조정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채무재조정을 할 경우 채권기관들의 자본잠식이 불가피하다. 프랑스 독일 금융회사 보유 남유럽 국채의 40% 정도가 상각된다고 가정할 경우 그 규모는 2000억 유로 이상이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 결과 하락한 자기자본비율 회복을 위해 자산을 회수하게 되고 이는 글로벌 신용경색을 불러오게 된다. 그 같은 글로벌 신용경색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 미국 중앙은행(Fed)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유럽 금융회사들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남유럽 국가부채의 채무재조정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로 인한 글로벌 신용경색을 차단해 보고자 하는 노력에 불과하다.

유럽위기는 결국 장기화하면서 세계경제는 저성장 고실업의 뉴노멀 시대에 진입해 보호주의는 강화되고 환율전쟁은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도 글로벌 장기침체에 따른 수출둔화가 불가피하고 글로벌 신용경색에 따른 외화유동성 부족 우려도 없지 않다. 적정 환율수준 유지,수출선 다변화,획기적인 내수 진작책 마련 등 수출둔화 대책이 필요하다. 중앙은행들의 긴급 유동성 지원효과가 사라지면서 유럽계 자금들이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에 대비해 외환보유액과 금융안전망 확충 등 외화유동성 부족에 대비한 컨틴전시플랜 마련도 시급하다. 재정건전성 강화가 중요함은 유럽 위기의 가장 큰 교훈이다.

오정근 < 고려대 경제학 교수 / 국제금융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