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세계화와 거리 먼 국제금융센터 건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가 동전의 양면처럼 진행된다고 해서 그런 용어가 나왔다. 한 국가의 경제발전은 각 지방의 발전이 모인 것이고,지방의 발전은 세계 속에서 그 위치를 찾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지방이라 하더라도 세계적 시야를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런 사람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당면한 지역균형발전 문제를 푸는 데는 무엇보다 이것이 선결 과제다. 그러나 이것은 균형발전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도 엄연히 '지방'의 하나이기 때문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서울시의 발전도 세계 속에서 그 위치를 찾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서울시도 그런 접근을 해 왔다.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한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하나인 '서해 뱃길'이나 여의도에 설립하기로 한 '국제금융 중심지'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그 중 서해 뱃길 사업은 수지 타산에 대해 논란이 많다. 그러면 국제금융 중심지 사업은 어떤가. 한국같이 외환위기에 취약한 나라에 국제금융 중심지가 맞는지는 모르지만,추진하기로 했다면 '글로컬라이제이션'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국제금융이야말로 세계를 움직이는 최첨단 산업이고 전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산업이다. 국제금융 중심지 건설에 세계적 시야를 갖춘 인재가 필요하고 그런 사람들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관치금융에 찌든 한국에 그런 인재가 많을 수 없고,그들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은 더더욱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나 막상 진짜 문제는 그것보다 훨씬 낮은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50여년간 그래도 중앙정부 공무원은 세계화라는 개념에 어느 정도 익숙해 있다. 그러나 지금 국제금융 중심지 건설을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은 '재개발'을 담당하는 서울시 공무원이다. 국제금융 중심지라는 세계화 사업을 그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토건 논리'에 젖은 재개발 담당 지방공무원이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국제금융 전문가의 아이디어는 투입되지 않았다. 국제금융 중심지라면 세계적 금융회사를 끌어들이는 것이 첫째 과제일 텐데,외국인학교를 세운다는 계획 하나 없다. 늘어나는 사무실에 대한 수요를 일으킬 방안은 없이 공급만 하면 된다는 재래식 토건 논리뿐이다.

경제논리 자체에 대해 무지한 대목도 있다. 서울시는 주민들로 하여금 소유한 땅에다 63빌딩보다 더 큰 것을 여러 동 지어서 분양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아마추어 집단인 주민들에게 그런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은 아무나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투표로 뽑은 '주민의 대표'가 유능한 기업가라는 보장은 물론 없다. 그 대표가 주민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해서 일하도록 만드는 '거버넌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런 이유로 세계적으로 '집단적 기업'이 성공한 예가 없다시피 한데,한국의 국제금융 중심지에서 그것이 될 일인가.

서울의 국제금융 중심지는 한 예일 뿐이다. 지금 전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곳곳에 만들어 놓은 '경제특구'는 세계적 관점에서 지방 발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맡아서 하고 있는가. 오히려 공무원 자리나 더 만들어 주는 식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렇게 본다면 새로 뽑는 서울시장은 무엇보다 제대로 된 세계화 감각과 그에 따른 추진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서울시장뿐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화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다른 지방의 행정책임자,나아가 나라 전체의 대표자도 그런 자질을 갖춘 사람이 돼야 할 것이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